“나는 어렵게 공부했지만 후배들만은…” 일흔을 훌쩍 넘긴 노신사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였다.

지난달 22일 인천고 총동창회 신년하례회에서 제20대 자랑스런 인고인상을 수상한 최성기(55회)씨는 자신이 치열하게 살아온 탓에 후배들만은 금전적인 어려움 없이 공부하길 바랐다며 남몰래 후배들을 도와온 이유를 밝혔다.

최성기 씨는 “선배가 후배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인데 이런 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라며 “어렵게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895년 구한말. 인천고등학교는 격동하는 개화기의 풍파 속에 관립 한성외고로 개교해 3세기를 거쳐 118년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일제치하 36년과 8·15광복, 6·25전쟁, 유신과 민주화를 온몸으로 겪은 인천고 동문들의 연대의식은 여느 학교 동창생들보다 강하다.

이들은 지금 ‘인천고 총동창회’를 통해 다시 뭉치고 있다.

1924년 신포동 중화루에서 일부 졸업생들이 갖던 모임이 효시가 된 인천고 총동창회는 현재 야구후원회와 동문장학회는 물론 지역별·직능별·동호회별 등 산하 38개 단체를 둔 대형 동창회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초대 이원옥 회장 이래 지난해 현 14대 이경호(67회)씨가 회장직을 맡으면서 동문 간 친목 도모와 모교의 발전을 위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인천고 3만5천여 명의 졸업생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구심점은 인천고의 야구.

고정섭(77회)야구후원회장을 중심으로 선수 지원과 재정 관리 등 4개 분야로 구성된 후원회가 매년 3천만 원 이상의 지원을 하면서 전국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하고 2005년 야구 100주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야구후원회의 눈부신 활동은 인천고 야구의 지속적인 활약을 약속하고 있다.

인천고 개교 100주년이었던 1994년 동창회는 동문 3천500여 명에게서 17억 원을 모금,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했다.

기념관은 4층으로 1층과 2층을 총동창회 사무실과 인천고 역사관,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3층과 4층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면학실과 회의실로 쓰이고 있다.

인천고 동문들은 총동창회를 기점으로 회기별 동창회와 지역 동창회, 직장별·직능별·업종별 동창회 등을 조직해 동문 간 친목을 도모하고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일본·캐나다·인도네시아 등 외국에까지 진출한 인천고 동창회는 뉴욕과 L.A에서 매년 장학금을 보내오는 한편, 일본에서도 매년 총동창회에 참가해 각종 야구기자재를 증정하고 있다.

서울지부와 부산·대구·경북·충남·수원 등 각 지부 동창회에서 해마다 야구후원금을 모금하는 것은 물론 인천강화지부 동문들은 매년 야구부 전지훈련을 주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인천고 졸업생들은 교사들의 친목단체인 율림회를 비롯해 경기은행 출신 동문들의 모임인 인우회, 농협동문회, 한전동문회, 개인택시동문회 등을 조직해 각자가 인천고 동문이라는 하나의 연대의식을 통해 모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천고 출신으로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동문들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각각 4선을 지낸 심정구(48회)·서정화(58회)전 국회의원이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학계에서는 서울대 총장을 지낸 신태환(31회)씨와 전 고려대 상경대 학장 조동필(36회)씨 등이 인천고 출신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전 인하대 부총장 남종우(53회)씨와 3선을 지내고 있는 나근형(57회)인천시교육감 등도 교육계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 오고 있다.

前 교장 40여 명 발자취 찾아 동분서주
◆  인터뷰 / 이경호  총동문회장

“저도 이제 환갑을 넘겼지만 학창시절은 엊그제 같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과 만나면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죠.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동창회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경호(64)상인천중·인천고 총동창회장은 우리 시대 동창회의 역할을 건조한 삶의 청량제라고 말한다.

   
 

인천고등학교 67회 졸업생인 그는 지난해 인천고 체육관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 내년 5월까지 임기를 앞두고 있다.

영림목재㈜ 대표이기도 한 이 회장은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비롯해 맡고 있는 크고 작은 직함만 20여 가지에 이르지만 그 중 특히 동창회장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 회장은 “6년 전부터 회장직 권유를 받아왔지만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서도 “막상 회장을 하면서 남모르게 동창회와 후배를 돕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동창회와 모교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고 졸업생들의 결속력이 강한 이유를 선후배 관계와 야구에서 찾는다.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선배들이 후배들의 멘토가 돼 물심양면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물론, 함께 응원했던 야구를 통해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것.

이경호 회장은 “중·고교 동문회이니 만큼 선후배 관계가 뚜렷하고 그로 인해 강한 결속력이 나타난다”며 “특히 야구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의 임기 동안 두 가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118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그동안 인천고 교장을 역임한 40여 명의 발자취를 찾아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과 인천지역 일부 학교 동창회 회장단이 함께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모임을 갖는 것이다.

이경호 회장은 “관립 한성외고는 물론 인천상업학교 시절의 일본인 교장도 조명할 계획으로 이를 위해 조사단을 구성하고 일본에 방문할 계획”이라며 “일부 사진과 문헌으로 존재하는 자료를 추가해 영상으로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천이라는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동산고·제물포고·인천고·인일여고·인천여고 동창회장단의 모임을 제안하고 있다”며 “그동안 학교 발전에 기여해 온 동창회가 앞으로 우리 모두의 고향인 인천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또한 자신의 임기 동안 동창회 재정 확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선배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마련해 비교적 탄탄한 재정상태를 가지고 있지만 각종 장학사업을 위해선 안정적인 자금이 필요하다”며 “올해 재정 확충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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