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삼요소 중 파토스(Pathos, 공감대, 정서적 유대감 형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피치에서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청중과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도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해오면서 청취자와의 공감대 형성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몸소 체험했습니다. 저는 극동방송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입사 초기에 맡았던 생방송 프로그램이 ‘남과 북이 하나되어’ 였습니다. 극동방송은 민간방송 최대 출력인 100kw로 송출하기 때문에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전파가 도달합니다.

매일 밤 10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제목에서 느끼셨겠지만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에 있는 동포들까지도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신입 시절에 최초로 맡았던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열정적으로 진행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베이징과 네이멍구자치구 지역을 탐사하는 청소년들을 동행해 방송 프로그램도 만들고 다른 프로그램에 전화로 현장 연결도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보름간의 짧지 않은 출장이었던 터라 맡고 있던 1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이 걱정되더군요. 동료 아나운서에게 맡기고 갈까도 생각했었지만 남달리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보름치를 다 녹음하고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드디어 출장길에 오른 저희 일행은 베이징 일정을 마치고 네이멍구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가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네이멍구는 중국의 한 자치구로 몽골 민족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중국어와 몽골어를 함께 쓰는 지역으로 주로 초원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원에는 양과 말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몽골 유목민족이 사는 마을에 며칠 동안 묵게 되었습니다.

유목민족의 이동식 주택인 ‘파오’에서 보는 밤하늘은 그야말로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절경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제 방송 인생에 계속 영향을 주게 되는 대단히 중요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출장을 떠나면서 자그마한 휴대용 라디오를 챙겨 갔었는데 멀리 중국에서도 우리 방송이 들리는지 궁금했었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의 청취자 반응과 참여는 대단히 높았고 또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지만 북한과 중국 지역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한국 시각으로 제 방송 시간에 맞추어 라디오를 켰습니다.

세상에! 방송이 정말 잘 잡히더군요. 서울에서 2천km나 떨어진 중국 땅에서 선명하게 들리는 제 프로그램! 정말 감동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방송이 전해지는구나!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북방 지역의 동포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에서의 방송을 기다리며 열심히 애청한다더니 바로 이런 심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제 프로그램을 다시 진행하게 되었을 때 방송이 잘 되었을까요, 아니면 잘 안되었을까요? 네, 생각하시는 대로 당연히 방송이 매우 더 잘 되었습니다.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생겼고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제가 제 방송을 듣는 청취자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청취자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공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날이 지나고, 또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지만, 저는 항상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방송하고 있습니다. 청취자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말입니다.

현재 제가 근무하고 있는 경인방송의 스튜디오에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방송한다’는 슬로건이 벽면에 붙어 있습니다. 역시 같은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크건작건 스피치의 현장에서는 반드시 청중(혹은 청자)의 마음을 얻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감대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공감대를 잘 형성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본받을 점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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