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효성 소설가

귀가 큰 나라님이 나타나 백성의 소리를 잘 듣고 선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큰 귀 나라님처럼 귀가 큰 사람이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며 마을 사람을 배려하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삽화로 그려 넣은 큰 귀를 가진 사람의 얼굴이 나라님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라님의 큰 귀는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잘 들렸습니다.

백성을 위한 간청은 순위에서 밀려나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측근의 달콤한 아부에 큰 귀가 활짝 열려 왕실은 부와 권력을 쌓았습니다.

나라님은 왕족의 곡간을 불룩하게 채우고 왕위를 차기 계승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나라의 최고 어른으로 여전히 녹을 받고 호위청에서 파견한 경비대가 신변을 보호해 주어 여생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상왕이 되고 태상왕이 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백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통문이 전국에 퍼졌습니다.

일심동체였던 최측근과 재물을 사이에 두고 내꺼다, 아니다, 서로 오물을 투척하며 난장판 싸움을 했습니다.

민망한 모습에 백성들이 눈을 흘겼습니다.

나라 곡간에서 빼 간 재물일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교과서에서 귀 큰 사람의 이야기가 슬그머니 사라진 게 언제였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세상은 동화가 아닌가 봅니다.

높으신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소통과 배려라고 합니다.

흔하디 흔해 빠진 말이 되어 가치를 잃었는지 이 덕목을 수련한 윗분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완장을 차면 심보가 달라지는 가 봅니다.

청문회에서 서로 물고 뜯는 훌륭한 분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분들은 고위직으로 이미 상당한 재력을 쌓았고 아들딸 살길도 빵빵하게 준비해 준 능력자 부모입니다.

퇴임 후에는 무슨무슨 고문이란 직함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고문료를 매달 챙길 것입니다.

나라에서도 임기 동안 큰 욕 보셨다고 감사함을 연금으로 보상해 줍니다.

그 재원은 모두 국민의 혈세입니다.

언젠가 자원봉사 갔던 시설에 계신 분의 항의가 생각납니다.

당신들, 우릴 돕는다고 생각해요? 봉사한다고 뿌듯해요?

심기 불편한 일이 있었는지 그분은 더 심한 야유도 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아닌 먼저 다녀간 봉사자 팀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그 자리 누구도 그분 말에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에 충분히 공감이 갔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람들이 당신네보다 잘 났으면 지금 우리가 당신들에게 봉사하고 있을 거요. 우리 몫을 당신들에게 내주었단 생각은 안 해 보셨지. 어수룩하고 똑똑하지 못한 우리가 있어 당신들이 꼭대기 자리 차지한 거요.

빚진 사람은 당신들이니 생색내지 마쇼. 우린 우리끼리 마음 나누며 잘 살고 있으니. 정말 고맙게 나누고 싶다면 낮은 자세로 봉사 오든가.

큰 귀는 상대방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입니다. 작은 관심일지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마음이 상대에게 감동을 줍니다.

세상은 모두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진정성이 보이는 배려를 하면 소통의 촉매제가 되어 서로의 관계가 긍정적 에너지로 발전합니다. 단

순한 진리지만 현실은 늘 허둥댑니다. 힘의 균형을 잘 맞혀야 하는데 센 쪽의 양보가 부족해서 입니다.

지시하고 억누르는 실세는 귀보다 입이 커겠지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 부재로 세상이 각박합니다.

위로하고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역할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이 멋진 역할을 할 수 있는 지휘봉을 하사 받는 일은 영광입니다.

영광이 되는 지도력으로 퇴임 후에도 선한 멘토로 남아 주십시오. 녹을 먹은 값은 비싸지고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국민을 챙기고 국익을 챙기는 고관을 모시고 싶습니다. 선거철만 빼면 늘 약자인 국민을 가슴으로 안아주는, 국민과 소통 잘 하는 지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세상을 각박하게 만드는 주역이 되실 양이면 제발 권좌는 참아 주세요.

이미 많은 걸 거머쥐었습니다. 짝퉁이 아닌 진실로 귀가 큰 지도자를 모시고 싶습니다.

청문회를 보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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