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대학교는 지난 1989년 2월 29일 건축과·전산과·사무자동학과·식품영양학과·사진과·산업디자인학과 등 6개 학과의 전문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1992년 의정부시 가능동 일대 임야에 터를 잡고 설립됐다.

지금은 전공심화 학사학위 과정을 포함해 5천 명이 넘는 학생이 학구열을 불태우는 경기북부의 중심대학으로 우뚝 섰지만, 경민대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외형적 성장세보다 설립 배경 및 이념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경민대 설립자 홍우준
# 병아리 300마리로 일군 학교, 경기북부 중심에 우뚝
‘慶旼(경민)’은 학교법인 경민학원 설립자 홍우준(91)박사의 호다. 1923년 평양 농촌마을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와 공산정권의 기독교인 탄압정책에 반공결사 운동을 펼치다가 부인 이연신(86)박사와 1947년 월남, 병아리 300마리를 기르며 6·25전쟁으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뒷바라지해 거지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홍 박사는 교육을 통해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이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 비극을 거친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1인 1기’ 전문기술 교육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그는 양주에서 천막교회를 짓고 야학을 하면서 독립운동가 황애덕(황에스터·1892~1971)선생과 쉴든 선교사,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여성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홍 박사는 1954년부터 한미종합기술고등학교 교장으로 지내면서 민족교육에 전념하던 중 1967년 의정부시 가능3동 산 38번지에 대지 19만1천700㎡를 구입함으로써 경민학원 설립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듬해 경민중, 1969년 경민여중을 잇따라 개교해 본격적으로 교육사업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1971년 경민상고(현 경민고), 1974년 경민여상(경민비즈니스고), 1985년 경민외고(경민IT고), 1994년 경민유치원이 설립되면서 경민학원은 경기북부지역 중추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했다.

# 수도권·군사지역 이중 규제 극복하고 설립

▲ 경민대 이사장 홍문종
1975년 대학 설립부지로 509만㎡를 확보한 경민대는 미(美) 1군단장 홀링스 워드(HollingsWorth)장군과 함께 국제화 시대를 대비해 17개 단과대학을 포함한 세계자유대학 설립을 추진했으나 당시 수도권 인구정책과 군사방어적 규제로 인해 불발됐고, 시대를 앞서 간 야심찬 교육혁신을 다시 이룰 날을 꿈꾸며 15년을 준비한 끝에 1992년 마침내 첫 입학생을 받았다.

경민대 초대 학장은 설립자 홍우준 박사가 취임했고 유병조 학장대리와 홍 박사의 장남인 홍문종 총장을 거쳐 지난해 이연신 박사가 제6대 총장에 취임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7년 세워진 경민대 교문은 여느 대학에서 볼 수 없는 상징성을 지닌다. ‘민족교육은 제2의 독립운동’이라는 설립이념을 반영해 서대문에 위치한 독립문을 본따서 제작하고 이름도 ‘독립문’으로 명명한 것이다.

경민대 독립문에는 ‘당신은 조국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우측에는 효행문, 좌측에는 충의문을 설치하고 민족의 얼을 상기한다.

# 경민전문대→경민대학교 비약적 발전
경민대는 1998년 3월 1일자로 교명을 기존 ‘경민전문대학’에서 ‘경민대학’으로 변경했으며 2011년 4년제 학위과정 개설과 함께 ‘경민대학교’로 변경함으로써 전문대학이라는 특수성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 양성을 위해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지속적인 투자와 교육환경 개선 노력도 아끼지 않아 2002년 206실 규모의 효행관 건립을 필두로 2003년 다목적체육관과 피트니스센터를 갖춘 대기념관을 준공했다.
2005년에는 각종 세미나와 경연을 위해 대형 예배실, 기도실, 세미나실, 소석수련원(80실 숙소)을 건립했고 2007년에는 중소기업청의 출자 지원으로 경기북부지역 최대의 창업보육센터인 창업궁전을 조성했다. 창업궁전은 지하 2층·지상 10층 총면적 1만1천900㎡ 규모로 50여 벤처기업이 입주해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및 고용 창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재학생들의 취업과 창업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골프연습장, 강의실, 학생복지시설을 갖춘 지상 6층의 승태웰빙센터를 개장하고 골프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교의 주인인 재학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 학업보다 중요하게 가르치려는 것
경민대는 모든 학생들에게 효와 충을 통한 인성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장치를 가동하고 있다. 1997년 개관한 효충관은 혜촌 김학수 화백의 ‘효자·충신·열녀·위인’ 풍속화 150여 점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경민대 학생들은 물론 지역 초·중·고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효충관은 2007년 대학 송림관 건물로 확장 이전하고 1층에 경민역사관을, 2층에 혜촌기념관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하드웨어만 갖춘 것이 아니라 국제 효만화 공모전, 신입생 효충인성캠프, 지역 중·고교 대상 학교폭력 근절교육, 의정부효시화운동, 군간부 충효지도사 교육 등 탄탄한 소프트웨어로 효 실천운동 확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육군과 협력해 2009년부터 시행 중인 충효지도사 양성교육은 ‘군대가면 사람된다’는 선배들의 인생경험을 충효교육으로 승화시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참된 사회구성원을 길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같은 학풍은 경민대 구성원들의 인사에서 드러난다. 경민대에 들어서면 “안녕하세요”가 아닌 “효도하겠습니다”라는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 타 대학과는 차별화, 지역에는 특화
경민대는 2001년 6개 학과에 대해 3년제 승인을 받은 후 2012년에 8개 학과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산업체 경력자를 대상으로 하는 학사학위 전공심화 과정을 개설해 25개 학과에서 학생을 모집했다.

지난해 경민대는 전문대학을 넘어서는 전기를 맞는다. 산업체 경력 없이도 3·4학년 과정으로 진학할 수 있는 ‘무경력 학사학위과정’ 19개 학과(유경력 1개 학과)를 인가받은 것이다.

현재 경민대는 여느 대학에서 보기 힘든 아동미술과·독서문화콘텐츠과·효충사관과·태권도외교과·가구인테리어디자인과 등 28개 학과를 두고 있다.

또한 지역특화 교육을 꾸준히 실시해 정부에서 숱한 인증을 받았다. 가구디자인센터 우수 특성화 대학, 경기북부 문화·디자인산업육성 특성화 대학, 경기북부 향토가구산업 지원대학, 지역산업 정보화 추진대학(이상 교과부 선정), 경기북부지역 산업정보화센터 지정대학(한국생산성본부) 등이 그동안 쌓은 훈장이다.

# 경기도를 넘어 세계로 펄쩍
경민대는 미국 유타주립대·리버티대, 중국 해양대·양주대·심양건축대, 필리핀 엥겔레스대 등 유수의 해외 대학과 공동교육협정을 맺어 한국에서 1년간 외국어 및 전공기초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현지 대학에 바로 진학할 수 있는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해외 체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해당 대학 교환 교수진에 의한 전공기초 강의와 출입국 관리, 기숙사 관리, 동문 관리 등으로 유학에 필요한 시간 및 비용을 최소화한다.

학교 내에는 신입생 기초영어강좌, 하·동계 토익캠프, 단기 어학연수, 토익시험 대비반, 온라인 영어회화 무료 강좌 등 원어민 교수의 실용회화 중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환교육으로는 호주 IBIC어학프로그램 연수·브리즈번국제대 홈스테이, 타이완 용화과기대 교환방문·도원창신기술대 한식조리실습, 프랑스 및 이집트 태권도선수단 방문훈련, 태권도외교과 인도네시아 태권도 시범 등 학과별 맞춤형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경민대는 학생들의 글로벌 마인드 함양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 ‘생면부지 모두가 경민가족입니다’
경민대 뒷산에는 홍우준 박사의 친부모가 아님에도 극진히 모시는 묘소가 있다.

홍 박사는 평양에서 부모를 모시고 내려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됐고, 애끓는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생면부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부부는 3남1녀 자녀들과 함께 매일 아침 단정한 차림으로 문안인사를 드리는 등 진짜 부모 이상으로 섬겼다.

홍 박사가 말하는 ‘효’는 단순히 내 부모 공경에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부모에 대한 공경을 통해 모든 학생이 형제가 되고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서 국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신념이 경민대 효 실천교육의 핵심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노인과 혈연의 정을 나눴던 홍 박사에게는 직원 모두가 자녀요, 학생 모두가 손자·손녀다. 이것이 경민대 독립문 안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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