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고등학교가 삼숭고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던 초기에 주민들은 학교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신생 학교가 단시간에 명문으로 도약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저 그런 학교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변 아파트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불거졌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폐교 건의 움직임도 일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3월 1일. 지역 명문고로 급부상한 삼숭고가 양주고로 이름을 바꾸고 신학기를 맞았다.

양주고의 교명 변경은 지역을 대표하는 학교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대외 이미지를 격상하자는 취지에 따라 전격 단행됐다.

주민들은 이제 양주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북적이는 광경을 뿌듯해 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자율형 공립고의 성공모델을 제시하다

2008년 3월 개교한 양주고는 2년 연속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멀리 타지로 빠져나가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지역 학교와의 경쟁에서도 밀렸다.

   
 
이대로는 악순환만 되풀이될 것이라고 판단한 학교 측은 발 빠르게 ‘자율형 공립고’(이하 자공고)로 승부수를 던졌다. 자공고는 학교 운영 자율성을 바탕으로 교사진과 교육과정 등을 특성화·다양화함으로써 질 높은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양주고는 미달 사태를 타개하고자 2009년 자공고 전환을 시도했다가 한 번 실패한 뒤 재도전 끝에 2010년 9월 교육부의 지정을 받았다.

지정됐다고 무조건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어서 전국 100개가 넘는 자공고의 성패가 제각각이었으나 양주고는 자공고 지정 후 2011~2013년도 신입생 내신 하한선 점수가 160점→180점→182점으로, 평균 점수는 180점→188점→190점(이상 200점 만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양주고의 기적과도 같은 성장세는 교사 100% 초빙 권한을 활용한 우수 교사 영입과 이공계 진학 특화과정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 대학생 부럽지 않은 글로벌 교육

양주고는 먼저 고3 담임 경력 10년 이상으로 진학지도 경험이 많은 교사들을 대거 초빙했고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학생 스스로 학업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자기주도학습’이다.

   
 
신입생들은 입학 전 15시간의 자기주도학습 캠프를 거친 뒤 주요 과목 중심으로 자기주도학습 코칭을 받는다. 입학하면 국·영·수 과목에 기초반·기본반·심화반을 편성하고 분기별 레벨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관리하면서 점차 타 과목으로 확대한다.

방과 후에는 4~10명의 학생 요구에 따라 개설된 ‘미적 쌩기초’, ‘굉장히 이지(easy)한국사’, ‘고전문학 독해’ 등의 강좌를 운영하고 대학생 선배들이 진학설계 멘토링을 지원한다.

학생들은 영어 듣기와 아침신문 읽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학교 측은 원어민 교사의 영어회화 인증 프로그램, 영문 독서 프로그램, 영어 자격시험 강좌 등을 통해 전교생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 확보를 도모한다.

글로벌 소양교육을 위해서는 2011년 베이징(北京), 2012년 상하이(上海) 등 양주희망장학재단의 보조를 받아 해마다 해외문화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 공교육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2011년 부임한 김광석(59)교장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고 대회에서 입상시키는 것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스카이’ 대학이나 의대를 나와야만 사회의 인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1981년 문산중에서 시작해 30여 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미래에 대한 막연함으로 중도 포기하는 제자들을 숱하게 봤던 그는 양주고 아이들이 장차 무슨 일을 하면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지에 초점을 맞췄다. 개개인이 사회에서 충분히 쓸모 있고 빛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최종 목표가 대입 등급이 돼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양주고는 ‘방과 후가 살아있는 학교’를 기치로 동아리 활성화에도 남다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현재 모의재판반·창의발명반·요리반·당구반 등 28개 동아리가 운영 중인데 이례적으로 정규 수업시간에 동아리 활동이 주 3시간 편성돼 있다.

학교 측은 또 아이들이 진정으로 재미를 느끼도록 외부 대회 참가, 소품·서적 구입 등에 반별 5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하고 매년 가을에는 동아리마다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발표회를 연다.

# 교과+동아리 이공계 특화로 대회 휩쓸어

양주고는 문과계열 특목고인 인근 동두천외고와의 차별화를 위해 자공고 운영권을 발휘, 수학·과학 등 이공계 교과과정에 예산을 중점적으로 투입했다.

   
 
그 결과 양주고 학생들은 2011년 ‘대한민국 창의력올림피아드’ 과학 극예술 부문 1위, ‘경기도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우수상, ‘서울대 융합기술인재선발캠프’ 장려상을 거머쥐었다.

지난해는 미국에서 개최된 ‘Destination Imagination(D.I.)대회’에서 세계 62개 팀 가운데 11위를 차지했고,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 청소년과학탐구반 과제에서 ‘고흡성수지를 이용한 건조 토양 완두콩 생장 탐구와 사막화 방지’가 선정돼 연구지원비를 받았다.

또한 ‘대한민국학생창의력 챔피언 대회’에서는 1학년 팀이 도전과제1 부문 금상을, 2학년 팀이 도전과제3 부문 금상을 수상했으며 ‘전국고등학생 바이오안전성·바이오산업 토론대회’에서는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양주고는 올해 초 전국 D.I.대회 96개 팀과 겨뤄 5개 분야, 총 30개(분야별 금 1·은 2·동 3개)의 메달 가운데 8개(금 3·은 2·동 3개)를 휩쓸어 5개 팀이 이달 세계대회 출전권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 학력-인성 두 마리 토끼 어떻게 잡았나

양주고 자랑 좀 해 달라는 부탁에 김 교장은 아이들이 유독 인사도 잘하고 표정이 매우 밝다고 했다. 몇몇 재학생에게 물어봤더니 ‘학교생활이 즐거워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교장은 정규교육에서 ‘차렷, 경례’시킨다고 인성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교실 밖 활동은 인성 함양을 넘어 창의력과 면학욕구에도 도움을 준다고 역설했다.

   
 
양주고 1학년생들은 수련회 대신 매년 강화도 역사탐방을 떠나고 2학년생들은 수학여행 대신 접경지 국토순례에 나선다. 학생들은 2년에 걸쳐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역사 현장과 남북 분단의 안보 현장을 체험한다. 특히 지난해 국토순례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부축해 가며 코스를 완주해 교사들을 감동케 했다.

양주고 학생들은 또 학교 앞 주말농장에서 텃밭을 가꾼다. 상추와 쑥갓 등 직접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서 기른 채소들을 수확, 매년 5월 체육대회 때 지역 노인 200여 명을 초청해 비빔밥을 대접한다. 물론 서빙도 학생들의 몫이다.

운동 프로그램도 학생들에게 인기다. 1인1기 방침으로 누구나 태권도를 배우고 전교생이 축구·농구·피구 종목으로 나눠 연중 리그전을 벌인다.

10대 후반의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통로가 있는 까닭에 양주고에는 동급생 간 소소한 다툼이 한 해 두어 건 발생할 뿐 소위 ‘일진회’ 등 집단폭력 사례가 전무하다.

# 흰 구름도 천천히 쉬어 가는 청정 자연

양주고가 위치한 삼숭동은 천보산 자락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최근의 모습을 형성했다. 때문에 유해시설 등 우범지역이 전혀 없고 단지 밀집지역 특성상 학교 앞 도로에서 과속하는 차량을 보기 힘들다. 학생들의 안전에 있어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삼숭동에 추위가 가시면 양주고 교실에는 국립공원에서나 맡을 수 있을 법한 산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공부하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짙은 녹음이 펼쳐진다. 장마 때는 이따금 뱀도 발견돼 백반 소독을 하고 이른 새벽 철제 펜스 바깥에서 고라니가 목격된 적도 있다.

맑고 푸르고 고요한 자연은 양주고의 최고 경쟁력이다. 대도시 사람들이 겨우 짬을 내서 찾아가야 하는 환경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기에 학생들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존중과 생명존중을 몸소 배울 수 있었다.

중소 규모 도·농복합도시라는 지역 특성을 살린 양주고의 실험이 끝나간다. 과거에는 우수 인재들이 타지로 유출됐지만 지금은 역진학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실험의 성공 여부는 이제 천보산 밑에서 특별한 한 가지를 더 배운 학생들이 사회에 얼마나 이로운 기운을 전파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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