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희망대초등학교 인근 주택가의 비좁고 경사진 일방통행 골목을 따라 200여m를 올라가면 영화 ‘완득이’에서 담임교사 동주(김윤석 분)가 옆집에 사는 제자 완득이(유아인)의 햇반을 빼앗아 먹고 소주잔을 나누던 옥탑방 골목이 나온다.

   
 

이곳은 1960년대 말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철거민을 수용하기 위해 졸속으로 조성한 시가지로, 성남 일대 산을 깎아 만들다 보니 당시엔 ‘마누라 없인 살 수 있지만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만 오면 비상이 걸리는 동네였다.

대부분이 58~66㎡(16~20평) 소형 낡은 주택으로 주민 중 60% 이상이 세입자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빼곡히 들어선 낡은 다가구주택에는 2~3가구가 거주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다.

특히 남쪽에 분당, 남서쪽으로 판교신도시가 자리잡으면서 성남 원도심은 쾌적한 신도시와 극명하게 비교되는 ‘열악한 옛 시가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성남시가 지난 6월 행정력과 중장비를 동원, LH 사옥 정문시설을 철거한 이유가 이곳 재개발 때문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성남 재개발 지역 수정·중원 원도심
‘빈민촌 사람들의 난동’으로만 알려져 온 ‘경기도 광주대단지 사건’은 1971년 8월 10일 청계천변 등지의 서울 무허가 판자촌에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현재 성남시 수정·중원구)으로 강제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도시 빈민들의 대규모 생존 투쟁이었다.

서울시장이던 김현옥 씨가 서울시내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해 서울 근교의 새로운 위성도시로 철거민을 집단 이주시킨다는 생각에서 추진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은 당시 광주군 성남출장소를 습격하고 차량을 탈취하는 등 광주대단지 일원은 6시간 동안 무정부 상태가 됐다.

이후 이 사건은 ‘폭동’이나 ‘난동’으로 규정돼 초기 이주민들의 상처로 남았고, 성남시로 승격된 이후에도 당시 무모한 사업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열악한 주거환경과 기형적인 도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1973년 광주군 중부면에서 성남시로 승격됐으며, 1990년대 초 분당신도시가 들어선 성남시는 현재 인구 100만 명에 육박하는 대도시를 이뤘다.

#재개발의 시작과 중단
성남시는 원도심과 신도시 구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2000년대 초 도시환경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성남시 도시·주거환경 정비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비예정구역은 305.1㏊에 26개 구역으로 이 가운데 재개발 사업은 15개 구역이다. 총 3단계 중 1·2단계 사업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진행하고 있으며 별 문제가 없는 한 3단계 사업도 LH가 시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LH가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은 인구밀도가 높고 가옥주가 영세할 뿐만 아니라 세입자가 60%를 넘는 지역 특성상 이주대책 없이 사업을 하면 전세난 등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성남시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1단계(단대·중동3구역) 사업은 아파트 1천762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별 무리가 없다.

   
 

2단계 4개 구역(신흥2·금광1·중동1·수진2)의 총면적은 66만8천314㎡로 1만1천52가구가 분양될 예정이었다. 수진2를 제외한 3개 구역은 설계도면이 다 나오고 시공사 선정과 관리처분만 남겨 둔 상태였다. 그런데 LH가 2010년 옛 시가지 2단계 주택재개발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지난 4월 고도제한이 완화되면서 LH는 재설계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LH는 주민보상금 등 본격적인 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지금이 손을 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사업성이 낮은 데다 자금난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업 포기를 선언하기 전에 성남시 및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의하는 것이 순서였으나 불쑥 포기 선언부터 한 것은 공공기관의 자세가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성남시의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선언에 대한 보복성이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까닭이다.

#끊임 없는 갈등
포기를 선언한 2단계 사업은 이미 행정절차가 65%나 진행됐다. 판교에 주민 이주용 임대주택 5천여 가구도 마련한 상태였다.

2008년 11월 원도심인 신흥2·중1·금광1 등의 2단계 재개발 사업시행자로 지정된 LH는 판교 백현마을 3·4단지를 재개발지역 주민 이주단지로 조성했다.

4년 넘게 빈집으로 남아 있던 이곳에 입주자 모집이 지난 6월 14일 평균 4.9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1순위에서 마감됐다.

이 단지는 2009년 12월 성남 2단계 재개발 이주민용으로 LH가 마련해 준공한 곳으로,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4년 넘게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 이에 LH가 일반국민임대로 전환해 분양하려 하자 성남시가 반대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번 임대분양을 놓고 성남시와 LH가 육탄전까지 벌이며 대립했으나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 청약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주민 간 갈등으로 옮겨붙기도 했다. 2단계 재개발구역 주민은 ‘일반공급 절대 불가’를 외치며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반면, 입주 희망자는 ‘유령 아파트로 방치하지 말라’며 일반공급 대찬성을 요구해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대립했다.

#해법은 무엇인가?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재영 LH 사장 내정자의 역할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내정자가 경기도시공사 사장으로 재직한 만큼 지역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절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우선 이재영 사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이 회동해 재개발 사업 정상화를 위해 어떤 대안과 의지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10일 희망대공원 야외무대에서는 ‘2단계 재개발 사업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주제로 시민 노상방담이 실시됐다.

재개발 사업 구역 주민 500여 명과 이 시장, 관계 공무원이 함께 2단계 재개발 사업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이 자리에서 재개발 주민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극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이 부분이 바로 성남시가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LH에 사상 유례없는 행정대집행을 하면서까지 재개발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구역별 재개발협의회의 입장이 다른 것이다.

재개발 주민들은 현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물이 새고 곰팡이가 방 안에 번져도 집주인이 수리하지 않아 주거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집주인도 재개발로 철거될 건물에 투자할 수는 없는 처지다.

이사도 못 가고 수리도 못한 채 오로지 LH의 처분만 바라보고 있는 주민이 1만8천 가구, 7만 명에 가깝다.

이제 주민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며 주민들 속에 작은 이해관계나 생각의 차이를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도심의 낙후된 지역을 물리적·사회문화적·경제적으로 다시 살려내는 것이 목적이다.

 이 사업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주민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또 사회문화·경제적 통합재생을 실현하려면 주민 교육 프로그램 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존심에 먹칠한 성남시민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성남시와 LH가 자주 만나 사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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