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지원 3천억 원, 인천 한 입주기업서 온 전화

   
 

남북한 경색 국면이 극으로 치닫게 되자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된 개성공단 입주기업. 개성공단 정상화를 우선적으로 합의한 뒤 후속 대책을 논의하자는 북한과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없이는 절대 개성공단은 정상화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그 사이 세 달이 넘게 개성공단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입주기업은 피가 마르는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개성공단 사태가 한 달째에 접어든 지난 4월 말, 인천에 있는 한 입주기업 대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위해 3천억 원 상당 금융 지원을 해 준다고 해도 대부분의 업체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제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정부가 지원을 해도 입주기업들이 금융대출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통일부가 2008년 9월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해 차주(借主)전환을 허용했지만 지난 5년간 단 한 차례도 차주전환 대출이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주전환이란 개성공단 현지법인과 국내 모기업 법인을 분리하는 제도로,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모두 차주전환이 상법상 가능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을 건립하고도 개성공단 현지법인에 대해선 차주를 전환해 주지 않아 입주기업들이 신용불량 기업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 차주전환, 왜 허용하고도 ‘안 했다’ 말했을까
차주전환 요청은 개성공단 입주가 본격화된 2005년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정부와 통일부를 상대로 차주전환을 허용해 줄 것을 줄기차게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개성공단이 우리 실정법상 대한민국에 속하지만 외국도 아닌 북한이라는 현실 때문에 금융권이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결국 3년간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다 2008년 MB정부가 차주전환을 허용했다.

당시 국내 정세는 미국산 쇠고기와 MB정부의 실정으로 남북한 화해협력이 절실했고, 금강산 민간인 피격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어서 차주전환 등으로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숨통을 트여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의 차주전환 허용 이후 단 한 건의 차주전환도 성사되지 못했다.

본보는 그 속사정을 낱낱이 파헤쳤다.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염원인 차주전환을 허용했지만, 실상 성사를 위해선 수없이 많은 진입장벽을 쳐놓고 있었다.

우선 통일부는 개성공단 현지법인이 채무를 갚지 못할 것을 우려해 국내 모기업에게 연대보증을 서게 했다. 또 실무 부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2009년 초부터 “차주전환을 허용할 수 없다”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차주전환 신청 자체를 막았다.

통일부 어디에서도 차주전환 신청에 대한 공지문이 없었고, 대변인실조차 차주전환이 이뤄질 근거조항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그 사이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 진출 초기 대부분 B+ 이상 우량 기업에서 C등급 이하로 신용등급이 떨어졌고, 이 때문에 인천의 경우 19개 진출기업 가운데 자체 신용등급으로 수출입은행 금융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차주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 현지법인의 부채가 국내 모기업에 전가돼 기업들은 심지어 제2금융권과 사채까지 끌어다 쓰며 간신히 버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통일부의 진실은?

   
 

본보는 이 같은 충격적인 사실에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로 했다. 특히 입주기업 대다수가 2009년 통일부가 차주전환을 허용한 뒤 A기업 단 한 곳에 대해 차주전환을 허용했다는 첩보를 입수, 실질적 입증자료가 될 해당 기업에 대해 끈질긴 추적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여러 언론을 통해 차주전환과 관련한 입주기업들의 억울한 사연이 잇따라 알려졌다.

하지만 통일부가 5년 전 허용한 차주전환을 왜 숨겼는지 뚜렷한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당장 통일부 대변인실은 차주전환은 규정 자체가 없어 성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늘어놨기 때문에 무엇보다 차주전환 혜택을 받은 A기업과 통일부 내부 근거자료가 이 문제를 푸는 결정적 열쇠가 됐다.

결정적 근거가 없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인천지역 정치인들과 인천시 공직계, 입주기업들에게서 단서가 될 제보들이 쏟아졌다.

2008년 통일부가 차주전환을 허용한 입증자료인 당시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 공식 브리핑 자료가 발견된 것.

통일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염원에 따라 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 열어 차주전환을 허용하기로 의결했다는 원고지 5매 분량의 보도자료를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실은 당시 다수의 국내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홍보한 내용이 현재도 인터넷 웹상에 버젓이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통일부의 내부 공식 확인 문서였다.

이후 비공개 회의를 통해 다시 차주전환을 금지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는 통일부였던 터라 보다 실체적 근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입주기업 간담회를 진행했던 인천시가 통일부에서 차주전환이 가능하다는 공식 문서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해당 문서를 통해 차주전환은 2008년 허용됐으며, 단 한 건도 성사되지 못한 이유는 입주기업들이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또 대변인실 등 실무 관계자가 차주전환이 법적 규정이 없다고 확인한 부분에 대해선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사실에 그동안 차주전환 때문에 신용불량 기업으로 낙인 찍혔던 입주기업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단순 실수라고 하기에는 사태의 심각성이 너무 크고, 기업들이 신청을 하지 않아 승인을 해 주지 못했다는 변명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법적 공방은 물론 통일부를 상대로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당장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고 개성공단 방북 자체가 무산된 상황에서 입주기업들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할 처지다.

언제 끝날지 모를 남북 간 극한 대립 속에 우리 정부만 믿고 전 재산을 모두 투자한 입주기업들과 협력업체는 여전히 자신들을 감쪽같이 속인 정부와 통일부를 바보같이 믿고 있다. 개성공단이 정상화되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 외로운 사투 벌이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개성공단이 꽉 막힌 상황에서 입주기업는 하루하루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정부가 정권이 달라진다 해서, 국가의 이익에 반한다 해서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돕기는커녕 사업 자체를 힘들게 하는 악습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소위 말하는 종북 좌파가 아니다. 그저 중국과 외국에서 수출제품을 생산하는 일보다 우리 동족인 북을 도우면서 동시에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 더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그것도 앞선 정부의 승인 하에 당당히 개성공단에 투자했을 뿐이다.

박창수 인천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장은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며 “개성공단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업체가 여럿인 만큼 우리 정부가 국민을 버리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재개를 조속히 추진해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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