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서 이제는 ‘선생님’으로
지난 2001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결혼이주여성인 허모(34·중국)씨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정책, 교육 등의 홍보 방식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국 내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허 씨는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중매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행을 결정한 허 씨는 중개업자를 통해 한국인과의 결혼을 선택, 한국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사진으로 처음 만난 한국인 A씨와 단 2~3차례 만나고 난 뒤 2~3일 만에 A씨와 결혼할 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다행히 2~3차례 만남을 가지는 동안 A씨와 성향이 비슷함을 느꼈고 무엇보다 A씨와 원활하지만은 않은 의사소통을 하면서도 그의 자상함에 끌려 일생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낯선 한국생활에 버팀목이 됐던 것은 그녀의 유쾌하고 상쾌한 ‘긍정의 힘’이었다. 그녀의 밝은 성격은 부부간 가장 큰 갈등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언어문제도 극복하게 해주었다. 남편과의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이 의외로 부부간 의견차에 따른 다툼이 생기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허 씨는 현재 지역 다문화가정센터에서 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단순히 혜택만 받는 외국인의 모습이 아니라,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당당히 일한 만큼 급여를 받는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다른 국내 체류 중인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에 올라선 허 씨도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10여 년이 필요했다.

우리사회가 베풀어주는 여러 가지 정책과 교육의 도움을 받았고 주변의 좋은 한국 사람들에 의해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허 씨를 위한 수많은 교육·프로그램, 남편과 시부모들의 지원에도 실질적이 도움이 되지 못했던 교육과 정책들이 상당수였고 현실과 동떨어진 홍보로 그나마 내실 있는 교육도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어느 기관에서 교육프로그램을 하고 있다고 하면 정보를 얻으려고 해도 허 씨 같은 외국인에게는 그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교육·프로그램, 정책 홍보가 인터넷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한국인에게는 편리한 시스템이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에게는 그 자체가 어려움이었다.

외국인들에게, 특히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국내로 들어온 결혼이주여성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자국에서 누려보지 못한 온라인 속 세상이 낯설기만하다.

허 씨는 자신의 성공 사례가 크게 부각되지 않더라도 다른 다문화 가정을 위해 이러한 부분을 많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컴퓨터, 인터넷 등은 자국에서 접해 볼 기회가 없었고 이는 전문가들이나 다루는 분야로만 알고 있었다”며 “참 많은 도움을 받았고 고맙게 생각하지만 좀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홍보가 이뤄졌다면 훨씬 빨리 한국 사회에 적응, 훨씬 빨리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이’에서 ‘실장님’으로
지난 2002년 한국이 월드컵 4강 진출로 한창 뜨거울 때 처음 한국에 발을 들인 칸(34·스리랑카)씨는 모두 들뜬 분위기의 한국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을 받아 줄 회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고 즐거워 보였지만 자신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당장 일자리를 찾지 못한 칸 씨는 초조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지인들의 소개로 안산 인근에 있는 공장을 알아보다가 지금의 사장을 만나 10여 년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지만 이를 밝은 성격으로 이겨냈고,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는 한국사람들을 배려하며 한발 더 뛴다는 각오로 임했던 칸 씨, 2011년부터는 생산직 부하 직원 9명을 지휘하고 있는 실장직에 올랐다.

자국에 있던 여자친구는 이제 한국에 와서 함께 살고 있고 더할 나위 없이 코리안드림을 충분히 이룬 상태.

오랜 시간 그를 지켜봤던 사장 C씨는 칸 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근면성실함은 오히려 한국인 동료들이 배워야 한다”며 “어떤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의문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려는 자세는, 그가 우리 공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이유”라며 칭찬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칸 씨의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국내체류 외국인을 위한 모든 교육에 참가하고 모임 활동을 충실히 한 결과, 문화적인 차이로 함께 공유할 수 없었던 유머도 이제는 자신이 이끌어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칸 씨는 “사장님과 동료 직원들의 배려로 점심식사를 30분 일찍 시작했고 나머지 1시간은 할 수 있는 모든 교육에 참여하는 등 열심히 공부했다”며 “회사 측의 배려가 없었다면 아무런 교육에도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상당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새벽 시간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점심, 저녁 식사시간 등을 활용해 외국인 노동자가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공단지역 등지에서 교육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