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직접 재판정의 실제 재판 현장을 300회 이상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았지만 “재판장은 말이 빠르고 반말을 많이 했다. 검사는 형식적으로 재판에 임했다.

변호사의 발음이 부정확해 알아듣기 어려웠다.”등 ‘말하기’와 관련된 적나라한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부 판사와 검사·변호사의 부정확한 발음과 낮은 목소리, 빠른 발언 속도 등으로 재판내용을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는 것이 많이 지적되었더군요.

이번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말하기’와 관련해 지적된 부분을 크게 보면 발음·말의 속도·읽기·목소리·청중(청자)과의 교감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비단 법조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로 소통해야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항들입니다.

먼저 발음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말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요. 한글의 발음에 관한 규칙이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어 표준발음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표준어 규정’의 제2부에 나와 있습니다.

 아나운서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여러 덕목이 있겠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발음’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를 선발할 때 대개는 서류전형·필기시험을 통과한 응시자를 대상으로 몇 차례에 걸쳐 카메라 테스트와 실기 테스트를 합니다.

이때 발음에 하자가 있으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훌륭해도 합격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발음에 문제가 있을 경우 방송에서 내용 전달에 큰 어려움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방송은 국민들을 계도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있기 때문에 ‘나는 /바담 풍/해도 너는 /바람 풍/해라’식의 접근은 원천적으로 불가합니다. 특히 TV처럼 자막이나 자료화면 없이 그야말로 ‘말’로만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라디오의 경우 ‘올바른 발음’은 아나운서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입니다.

그러면 발음의 문제를 고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단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평생 같은 방식으로 해 온 발음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발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소리에도 값이 있습니다. 음가(音價)입니다. 자음·모음을 표준발음법의 소리값대로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발음이 꽤 많습니다. 모음 발음의 몇 가지 예제(例題)를 드릴테니 한번 발음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ㅐ’와 ‘ㅔ’의 구별입니다. [매미/메밀], [개/게]. 명확하게 구별 되시는지요? ‘ㅐ’는 입 모양도 더 크고 밝은 느낌으로 소리를 내야 합니다.

 다음은 ‘와’의 발음입니다. [왕과 나]. 혹시 ‘왕가나’로 발음되지는 않습니까? 어린이들이 잘 틀리는 발음 중에 ‘위’가 있습니다. [가위 바위 보]. ‘가이 바이 보’라고 하는 사람들 꽤 있습니다.

단모음으로 발음해야 하는 ‘외’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국회]는 ‘구케’가 아니라 ‘구쾨’ 혹은 ’구퀘’로 발음되어야 합니다. ‘외’ 발음이 워낙 쉽지 않다보니 ‘웨’ 발음까지는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모음만 생각해봐도 매우 많은 분량이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마무리짓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음과 모음 모두가 각각의 정확한 소릿값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아나운서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분으로 모 방송사 아나운서 실장까지 오르신 베테랑 아나운서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향이 부산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선배는 단 한순간도 출신지를 유추할 만한 단서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경상도 사투리를 고치기가 제일 쉽지 않습니다. (물론 사투리를 무조건 고쳐야 한다는 말씀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나운서가 되려고 발음과 억양을 고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는 방증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한평생 굳어져 온 발음상의 문제도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개선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잘못된 발음을 고쳐볼 의사가 있다면 당장 이것부터 실천해 보십시오.

평소보다 입을 크게 벌리고 말하기, 한 음절 한 음절 천천히 소리내기, 어려운 발음을 휴대전화 등에 녹음해 모니터해보기. 스피치 현장에서 혹은 대화에서 의사전달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가 되는 것, 바로 발음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다음을 발음해 보고 사전에서 정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곱하기/흐뭇한/금요일/미닫이/밭에는/묻히다/민주주의의 의의/교과서/고가도로/태권도/외상 참외/화가와 관람객/국무위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