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은 농경사회에서 수확을 기념하는 오래된 풍습으로 삼국시대까지 그 기원을 잡는다.사진은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추석 차례상 앞에서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대사회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 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인간에게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라 만월은 그만큼 소중했다. 그래서 인간은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추석’이다.

#추석의 유래
추석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며 ‘중추절(仲秋節)’이라고 하는 것도 가을을 초·중·종추 등 3달로 나눠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어 붙은 이름이다.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 계절이 되면 1년 중 가장 큰 ‘만월날’을 맞아 즐겁고 풍족한 날을 보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삼국시대 초기부터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들을 두 패로 나눠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윗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삼 삼기를 했다.

마지막 날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 턱을 내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오랜 전통이 있는 추석 명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추석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기후가 쌀쌀해 사람들은 여름 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 주기도 했다. 추석날 첫 번째 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주부가 수일 전부터 미리 준비한 제물을 차려 놓고 차례를 지낸다. 이때 설날과는 달리 흰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에 앞서 벌초를 한다. 추석이 돼도 벌초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은 있어도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로 생각해 남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무병을 비는 거북놀이.
#추석 음식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제찬을 준비하는데 설날의 제찬과 별 차이는 없다. 다만 추수의 계절이라 햇곡식으로 밥·떡·술을 만든다. 철이 이르면 추석 차례에 햇곡식을 쓸 수 있고 철이 늦으면 덜 익은 벼를 베어 찧은 다음 말렸다가 방아를 찧어 햅쌀을 만들어 쓴다.

철이 늦은 해에는 미리 밭벼를 심었다가 ‘제미(祭米)’로 쓰는 일도 있다. 추석 떡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 없다. 올벼로 만든 송편이라 해서 ‘올벼송편’이라는 말이 생겼다. 송편 속에도 콩·팥·밤·대추 등을 넣는데 모두 햇것으로 한다. 열나흗날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드는데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고 잘 못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또 태중인 부인이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할 때에는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 넣고 찐 다음 한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 쪽이나 솔잎의 붙은 곳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 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을 징조라고 점을 치는 일도 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려면 술이 필요하다. 추석 술은 ‘백주(白酒)’라 해 햅쌀로 빚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 한다. 술을 많이 준비해야만 이웃 사이에 나눠 마시고 소놀이패·거북놀이패들이 찾아왔을 때 일행을 후하게 대접할 수 있다. 가을 과일로는 감·밤·대추·호두·은행·모과 등이 과거의 것이고 최근에는 사과와 배가 첨가됐다.

밤·대추·곶감은 제물로 필수여서 가을에 알밤을 말려 뒀다가 쓴다. 추석 때의 풋밤은 제상에도 오를 뿐더러 밥과 송편에도 넣고 ‘단자(團子)’를 만들기도 한다. 대추는 감미가 있어 여러모로 쓰였고 약식에도 넣었으며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추석의 민속놀이
가윗날은 한국의 고유한 명절로 오래전부터 인식돼 수확의 경축적 의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별로 풍성하고 다채로운 민속들이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놀이가 전승되고 있어 호남 남해안 일대의 강강술래와 소먹이놀이·소싸움·닭싸움·거북놀이 등은 농작의 풍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으며 경북 안동지방의 가마싸움도 전해지고 있다.

▲ 임란때 전술에서 비롯된 부녀자들의 놀이인 강강술래가 전라도 고유의 민속놀이로 지금껏 남아있다

▶강강술래=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노는 놀이로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다.

강강술래를 할 때는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앞소리를 부르면 놀이를 하는 일동은 뒷소리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춘다. 강강술래의 가장 큰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왜군들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고 왜군이 우리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부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지대 산에 올라가도록 하고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한 것에서 비롯됐다.

전쟁이 끝난 후 그곳 해안 부근의 부녀자들이 당시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서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이 전라도 일대에 퍼져 이 지방 특유의 여성 민속놀이가 됐다. ‘강강술래’라는 말은 한자의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강강’의 ‘강’은 주위·원(圓)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로 된 ‘巡邏(순라)’에서 온 말로서 ‘경계하라’는 뜻으로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추측된다.

▶거북놀이=수숫대를 벗겨 거북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속에 2명이 각각 앞뒤로 한 명씩 들어가서 마치 거북처럼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노는 놀이이다. 거북 앞에는 거북몰이가 거북의 목에 줄을 끌고 가고 그 뒤에는 농악대가 꽹과리·북·소고·짚장구 등 타악기를 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를 돈 다음 비교적 부유한 집을 찾아간다.

주인집에서는 떡·과일·술·밥·반찬 등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내놓는다. 놀이 일행은 음식을 먹은 뒤 잠시

▲ 그해 햇곡식으로 술을 빚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온다.
쉬었다가 거북몰이가 거북을 보고 “거북아~ 음식도 먹었으니 인사나 하고 가자”고 하면 거북이 집주인을 향해 넙죽 절을 한 후 한바탕 뛰어놀다가 다른 집으로 간다. 이렇게 차례로 큰 집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보낸다.

거북을 만드는 재료도 수숫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왕골이나 만초, 나뭇잎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거북놀이는 거북처럼 마을 사람들의 장수와 무병을 빌고 마을의 잡귀·잡신 등을 쫓는 데서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소놀이=지방에 따라서 ‘소먹이 놀음’, ‘소놀이 굿’, ‘나무쇠 놀음’ 등이라고도 한다. 소를 만드는 재료는 한지(韓紙)에 흙빛 색물감을 칠하고 들기름을 먹인 것인데 장년 두 사람이 들어갈 만하게 큰 소를 만든다.

그 속에 앞이 되는 한 사람과 뒤가 되는 한 사람이 들어가 허리를 구부린다. 그러면 뒷사람이 두 손으로 앞사람의 허리를 껴안고 소걸음같이 걸으며 한 사람의 소몰이꾼에게 끌려 같이 가는데 뒤에는 일행으로 농악대가 뒤따르며 마을의 여러 집을 돌아다닌다.

집에 도착한 일행은 그 집 마당에서 한바탕 농악에 맞춰 춤을 추며 놀이를 벌인다. 한참을 놀고 나면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고 이들 일행은 밤이 늦도록 마을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논다.

앞에 든 것은 경기지방의 예이지만 황해도 지방에서는 청년 두 사람이 궁둥이를 서로 마주 대어 엎드리고 그 위에 멍석을 덮어씌우고는 앞이 되는 한 사람은 두 개의 막대기를 양손에 각각 한 개씩 위로 내어 들고 뒤가 되는 한 사람은 한 개의 좀 기다란 막대기를 아래로 내 들어 마치 소의 뿔과 꼬리처럼 만들어서 논다.

▶가마싸움=8월 추석에 서당의 아이들이 편을 갈라서 바퀴가 4개 달린 가마를 앞세우고 양쪽 편이 각기 상대편의 가마에 접근해 먼저 가마를 빼앗거나 부수면 이기는 놀이. 싸움에서 이긴 편은 그해의 과거에 많이 급제한다고 해 풍악을 울리며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흥을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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