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구체성을 띨 때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추상에 머문다면 살아 있는 역사라고 말하기 어렵다.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 축은 아무래도 왕조사다. 왕조사의 정점에는 최고통치권자인 임금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이 없던 시절에는 초상화인 어진을 그려 임금의 실체와 업적을 상기시켰다. 어진 화가는 당대 최고이기 마련이었고, 재료 역시 최상의 것을 사용했다.
 
묘사 또한 실제와 조금의 차이도 있어서는 아니됐다. 임금은 그만큼 존귀했다.
 
우리 역사에는 수백명의 왕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조선시대만 해도 500년에 가까운 세월에 27명이 차례로 옥좌에 올랐다. 이중 어진을 남긴 임금은 얼마나 될까.
 
실제 용안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조선조 임금은 4명에 불과하다. 태조와 영조, 철종, 고종이 그들인데, 이중 철종의 어진은 화재로 불타 일부만 남아 있다. 최근 발견된 세조 초상은 진위를 단정하기가 아직 이르고, 순종은 사진으로만 존재한다.
 
지금 있는 어진 중 원본은 거의 없다. 태조 영정은 1872년에 모사했고, 영조 등도 1900년대에 과거의 것을 옮겨 그린 것이다. 나머지 임금의 어진은 어찌된 걸까.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 어진조차 없는 이유는 뭘까.
 
잠시 외국의 사례를 들춰보자. 중국의 경우 당 태종은 물론 송 휘종, 명 주원장 등 역대 황제의 어진이 상당히 남아 있다. 청 건륭제의 경우는 젊었을 때부터 나이들어서까지 정면과 측면 등 각종 포즈의 초상화를 다수 남겼다.
 
일본은 또 어떤가. 근세는 물론 500년 전에 살았던 오다 노부나가의 인물화가 생생한 모습으로 호령한다. 잘 생기지는 못했으나 최고통치권자의 위엄이 서린 그림이다. 미국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초상화가 줄줄이 보존돼온다.
 
우리의 역대 임금도 외국처럼 어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이성미 교수는 “조선조의 경우 어진은 모두 있었고, 10년에 한번씩 그리도록 돼 있었다”고 말한다.
 
어진이 부재하다보니 상상으로 그 윤곽을 만들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대왕이다. 유감스럽게도 1만원권 지폐에 새겨진 세종대왕은 실제 모습이 아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상상에서 나왔을 뿐이다. 상상은 인물을 가공해낸다. 그래서 풍성한 수염에 중후한 인품이 드러나는 미남형이기 마련이다. 그 결과 허상을 실상으로 믿는 상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진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혹시 어딘가에서 햇빛 볼 날만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망실됐다면 그 시기는 근래일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창덕궁의 선원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종적이 묘연한 역대 임금의 어진을 찾으려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없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으려니 하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건 아닐지 모르겠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도 “찾을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느냐”면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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