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 고양시장
기호일보사의 대표이자 중견 시인인 한창원 시인의 시집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를 펼친다. 서정적인 시어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에피소드의 다양한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보아도 진한 그리움의 정서가 한결같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시는 인간의 정서에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쑬이라 말할 때 한창원 시인의 정서는 그리움이라는 심연에 깊이 침참해 있는 듯하다.

시집 2부의 제목은 ‘어머니’이다. 그리고 페이지를 더 넘겨 읽다보면 독자들은 곧 시인이 가진 그리움의 한가운데에 어머니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을을 알 수 있다. ‘죽음’ 이라는 사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우리의 일상에서 금기의 영역에 속한다.

 죽음은 정상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닥치는 이변으로 그 개인과 주변 이들이 영위해온 모든것을 일순간의 무(無)의 상태로 돌려버리며 삶의 연속성을 파괴해버린다.

죽음은 이처럼 계획되고 예측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 우리는 늘 죽음을 직접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그리움과 애도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사랑의 상실만큼 가슴 아픈 게 어디 있을까? 영원한 관계를 꿈꾸는 것이 사랑이라면, 이별은 그 꿈을 산산조각 낸다. 그것도 이별이 사별이라면 그 고통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관계의 지속을 지향하지만 지상에서의 영원한 관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별은 사랑의 전제조건이다. 사랑의 기쁨은 이별의 고통을 담보로 주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운명은 처음부터 비극적이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런 비극적 운명을 피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공들이 우리 아닌가. 그러기에 사랑의 대상이 사라졌음에도 그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려는 안간힘을 쓴다. 아니 영원으로까지 그 사랑을 승화시키고자 하는 애절한 노력을 한다.

“… 어머님!/ 어머님은 익모초 쓴물이 만병통치약이셨죠./ 배가 아프시고, 머리가 아프시고, 코피를 많이 흘리실 때도/익모초를 쿡쿡 찧어 마시면 거뜬이 일어나시곤 했는데…./ 어머니 아시나요/ 어머님이 떠나신 후 그 이듬해/ 어머님을 모신 그 주변에 익모초들이 무성히도 자라 있어서,/ 또 한 번 저를 울리셨던…” <제목 ‘어머니’ 중>

익모초를 보고도 눈시울을 붉히는 한창원 시인은 가을 소래포구에서 어둠의 길목에서,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심지어는 ‘아무리 손을 뻗어 가까이 가려해도 당신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악몽을 꾸어가면서도 어머니를 호출해낸다.

그리고 이 시인의 애절한 노력은 사랑했던 어머니를 추억하고 기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남은 자신 스스로의 삶의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곧 삶이 원동력으러 전환된다.

“…이제 숙제를 끝낸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오랫동안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하나 둘씩 생겨나와 작은 소망으로 피워올랐습니다. 아직 못 다한 기억들이 있다면 가슴 어디엔가 소중히 간직해 놓고 조금씩 꺼내 보려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길을 위하여 열심히 달려갈것입니다….”  <‘시인의 말’ 중>

한창원 시인의 시집을 덮으면서 나는 노인성 질환을 앓고 계시는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먹먹한 마음도 잠시, 나는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생각했다.

시청에서, 행사장에서, 길에서, 나와 마주하는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들 말이다. 그리고는 자식 같은 시장, 가족 같은 시장으로 진정 그분들을 위해 시장으로서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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