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빈곤 노인을 돌보는 봉사다. 다녀오면 늘 마음앓이를 한다. 추워지는 날씨를 대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 보람있었다는 뒤풀이 인사가 민망해진다.

일시적 치료와 연탄 이 삼백 장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생의 마지막 주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애잔함으로 남는다. 스러져가는 기운은 물기가 말라 가볍고 상처도 쉽게 생긴다.

바람에 날리고 스치면서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고단한 노년은 성한 곳보다 부실한 곳이 많아 자조적인 말처럼 종합병원이 맞다.

지금은 100세 시대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100세 장수는 귀한 축복이고 경사였다. 지금 우리 시대의 장수는 축복만은 아니라서 긴장이 된다. 오랜 세월을 살아 100세가 될 때까지 재산과 건강을 잘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한 생을 돌아보면 잉여는 없다.

누구나 축복으로 세상에 나왔고 성에 차든 아니든 성실하게 살았다. 운이 좋았거나 부모 덕을 봤거나 열심히 수신제가를 했거나 간에 결과가 좋아 노년이 평안하면 축복받는 생이 되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녹록하기만 했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파에 옴 몸으로 태풍을 맞고 심하면 쓰나미에 쓸려 생사가 위태로운 경험도 했다.

노후준비는 당신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것은 온당치 못한 책임전가라고 본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세월을 지나고 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준비 안 된 노후다.

열심히 애들 교육시키고 집 한 칸 마련하려고 허리띠 졸라맸고 병치레하는 늙은 부모님 돌봤고 다 큰 자식들 출가까지 시키고 보니 바스락대는 빈껍데기만 남는다.

지금처럼 노후준비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인생재무설계를 받아본 적도 없다. 돌아보니 아득한 저 끝에 젊음은 가물가물하고 코앞의 현실은 춥고 서글프다.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한다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어려운 시절을 보낸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희망이고 자부심이었다. 먹고 살 만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빈곤한 노년을 보내는 고령층은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 탓이다. 준비 안 된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섬뜩한 말이 현실이 되었다.

최근 지니계수의 수치를 놓고 잘난 정치권에서 서로 말들이 많다. 빈곤고령층에게 실질적으로 살 만해졌다 느끼는 체감온도 변화를 주려고 진심으로 애쓰는 노력보다는 맞네 틀렸네.

여당도 야당도 서로 상대방을 흠집내기에만 바쁘다, 지니계수는 경제용어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지니가 제시한 지니의 법칙에서 나온 것으로 0과 1 사이를 값을 가지고 있다.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한 소득분배가 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분배가 된다. 이런 경제용어를 몰라도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요즘 뉴스의 중심에서 여야가 서로 핏대 세우며 지니계수 발표 시기가 적절했네 아니라네, 지니계수 수치가 진실이네 아니라네.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머리가 아프다.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지니계수는 OECD 34개국 중 하위권인 21다. OECD 평균보다 높아 우리의 소득분배불평등 정도가 심하다는 평이다. 그중에서도 고령층만 따로 떼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지니계수는 2011년 기준 경상소득기준으로는 0.418, 시장소득으로는 0.505, 가처분소득으로는 0.418 등으로 남미의 멕시코·칠레와 함께 최고 수치로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살 만해졌다는 자부심의 이면에는 우리 경제부흥에 젊음을 바친 지금의 장년 노년층의 희생이 있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노후준비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 실수가 장수시대가 도래하면서 삶의 질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 노후의 경제력을 준비해 온 고령층보다는 최소한의 생활비인 연금준비조차 안 된 고령층이 훨씬 많다는 통계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겠지만 과도기를 살아 희생해온 지금은 노년층은 우리가 조금씩 보태야 마땅하다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노년은 더 길어질 것이다. 긴긴 노년을 장수시대라고 축복이라 여기며 여유롭게 살고 싶은 희망은 누구나 가지는 소망이다. 심적·물적 여유를 누리려면 젊어서부터 연금준비도 하고 건강관리도 하고 취미생활도 준비하고 지인들과 좋은 관계도 유지하면서 노년을 준비해야겠다.

노년은 비극이 아니고 잘 살아온 선물이니 축복으로 보내야 한다. 노년의 지니계수 0을 만드는 노력, 서로가 함께 나누는 세상을 꿈꿔 본다. 노년이 서럽지 않아야 진정한 선진복지국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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