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민족성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4자 성어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해도 실언은 아닐 것이다. 열자(列子) 「탕문편(탕問篇)」에 나오는 우공이산의 우화(寓話)는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어떤 큰 일이라도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비유에서 유래한다.

오늘날 중국은 냉전시대의 낙후성을 벗어나고 있으며, 21세기 첨단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군사력 분야에서 과거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다수 병력위주의 재래식 전력이 아닌 최첨단의 막강한 정예 정규군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심각한 갈등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중국과 일본과의 댜오위다오섬(센카쿠섬) 영토분쟁에서 보여주는 중국 군사력의 시위양상은 결코 단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는 것을 역사 속에서 감지할 수 있다.

그 역사적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는 치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3세기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려고 출정했던 3차례 원정에서 실패했었고, 16세기 임진왜란도 결과론적으로 강화를 요청한 명나라를 보는 관점에서 패전이라고 하겠다. 1894년 청일전쟁도 패전이었으며, 근대사에서도 중국은 1931년~1932년 만주사변(滿洲事變)과 1937년~1945년 중일전쟁(中日戰爭)에서도 사실상 일본에 참패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청나라 말기 세계열강에 연전연패를 당해 국권이 침탈당하는 치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제1차 아편전쟁(1839년~1842년)과 제2차 아편전쟁(1856년~1860년)에서 영국에 패전했으며, 6·25전쟁 즉, ‘항미원조전쟁’(1950년~1953년)도 결과론적으로 휴전을 유도하면서 15만여 명이 사망하고도 이긴 전쟁으로 볼 수 없다.

 그후 1979년~1988년 베트남과의 국경분쟁으로 시작한 중월전쟁에서도 베트남 침공의 전략적 목표를 포기한 채 일방적으로 철수해 종전했으나 결과적으로 베트남에 패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아시아의 최대 강국을 자처하던 중국의 과거사에서의 전쟁기록은 패전으로 얼룩진 치욕의 전쟁역사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의 종지부를 내릴 수 있도록 한 지도자가 바로 덩샤오핑(鄧小平)으로서 그는 1976년 마오쩌둥의 사후 중국사회주의체제의 안정을 기하면서 젊은 후계자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준비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국가지도지침을 내려 대외적으로 국제사회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내부적으로 국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도록 했다.

 1990년대에는 ‘화평굴기(和平 山+屈 起)’라 해 개혁개방을 과감히 추진하면서 아시아의 주변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위장평화전술을 외교적 지침으로 지난 20여 년간 추구하면서 ‘도광양회’라는 국가의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군사력 구축을 해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거와 달리 중국의 강경한 군사적 동향과 외교적 강경자세는 도광양회의 군사력과 함수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군사력은 과거 인해전술로 각인된 인민해방군의 구태의연한 군 이미지와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무장력을 갖춘 세계 2위의 강군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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