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에 관한 속담 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쓰이는 것일 겁니다. 그런가하면 비슷한 뜻의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청소년·청년 사이에 급속히 퍼지는 이른바 ‘명언 패러디’에는 이 속담이 이렇게 변형되어 있습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인가부터 ‘공격형 언어’가 많아졌습니다. 일상적인 인사로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는데 “남이야 어딜 가건 말건 알아서 뭐 할래?”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당황스럽겠지요? 한때 드라마에서 유행했던 대사 “잘났어, 정말.”, 영화를 통해 유명세를 탄 “너나 잘 하세요.” 이런 말들은 쓰기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호의를 단번에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마주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공격적인 언사가 오간다면 절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대화는 이기고 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 공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화는 승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들이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더욱 좋은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탁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보내는 공을 잘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보내는 공도 잘 보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다음의 대화를 눈여겨보십시오.

   A: “요즘 책 좀 읽으시나요?”           B: “네.”
   A: “어떤 책인가요?”                   B: “OOOO입니다.”
   A: “네 그렇군요. 저자는 누구인가요?”   B: “□□□작가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어딘가 좀 답답한 구석이 있는 대화 아닙니까? A는 대화를 계속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B는 짧은 대답으로 일관하며 A쪽으로 던져주지 않으니까 이렇게 어색한 대화가 되고 만 것입니다.

 마치 왕초보자와 탁구 치는 것 같습니다. 정성을 다해 공을 넘겨주면 상대방은 자신에게 넘겨주지 않고 끝내버리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럴 때에는 양방이 다 피곤하게 느낍니다.

말을 거는 사람은 계속 이끌어가야 한다는 강박감과 책임감 때문에 초조해지게 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느낍니다. 반면에 대답하는 사람도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계속 추궁당하고 있는 것 느낌을 받아서입니다.

이런 일방통행식의 대화에서는 결국 더 이상 물을 말이 없어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어져, 어떤 한 쪽이 완전히 할 말을 잃게 되고 말겠지요? 실제 방송 인터뷰에서도 이런 일들은 종종 발생합니다.

 방송 시간대와 인터뷰 주제 등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10분 인터뷰에 대개 7~12개 정도 질문을 준비하는데 불과 2~3분 사이에 모든 질문이 다 소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행자 입장에서는 진땀나는 상황입니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말을 받는 사람은 ‘받아들이기’와 ‘돌려주기’라는 두 가지의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받아들이기’는 맥락 다듬기(context-shaped)로도 불리는데 앞사람의 말을 수용하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돌려주기’는 맥락 갱신(context-renewing)이라는 용어로 설명되는데 그 말을 받아서 다시 새로운 정보를 담아 상대방에게 돌려주는 일을 말합니다. 앞의 대화 예를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A: “요즘 책 좀 읽으시나요?”                B: “네.□□□작가가 쓴 OOOO를 읽고 있습니다.”
   A: “어떤 내용인가요?”  B: “◇◇◇를 주제로 한 책인데 참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A씨는요?”
   A: 네. 저도 읽고 있는 책이 있어요.(후략)”

앞의 상황보다는 훨씬 더 대화다워졌지요? 이렇게 받아들이기와 돌려주기를 제대로 하니까 대화가 풍성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이 말하기 편하도록 친절하게 돌려주면 대화도 부드럽게 이어지고, 인간관계까지도 더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대화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받아주고 잘 돌려주는 것이 미덕입니다. 공격형 언어를 자제합시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받아주고 잘 넘겨주는지 스스로의 대화법을 분석해 보고 고칠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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