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전사의 독재자의 상징은 중국의 진시황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시황은 진(秦)장양왕의 아들로서 태어난 배경부터 복잡미묘한 사연이 있었으나 춘추전국시대의 난세(亂世)를 평정하고 중국 최초의 황제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3황 5제보다 자신이 위대하다는 뜻으로 황제라 칭했고, 자신의 가문에서 자손만대 황제가 이어져야 한다는 유일독재혈통을 선언하며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 했다.

그는 불로장생의 허황된 꿈을 꾸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뒤지게 했을 정도로 독재자의 권좌에 미련을 두었는데 죽기까지 무려 37년간을 군림했다.

그러나 진시황제가 37년간이나 다스렸던 진제국이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2대 호해는 3년간 다스리다가 폐위되었고, 3대 자영은 고작 46일 정도 권좌에 있다가 초패왕 항우에게 패해 자결하는 비운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독재의 해독을 살펴본다.

여기서 현대판 진나라를 꿈꾸었던 김일성이라는 독재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우선 그는 북한을 1945년 해방 이후 1994년 죽기까지 무려 49년간을 통치한 독재자였다.

그의 뒤를 이은 김정일은 실질적으로는 70년대 후반부터 후계자로 북한을 통치한 점을 고려할 수 있으나 공식적으로 2011년 12월 17일 죽을 때까지 17년간 독재를 하다가 죽었고,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이 3대 세습식으로 정권을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김씨 왕조라 할 수 있는 김일성가 3대 정권세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무후무한 일이기도 한 일이 21세기에 일어난 것이다. 과연 김씨 왕조는 잘나가고 있는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역사는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멸망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진나라의 멸망원인을 후한(後漢) 역사학자가 평가한 것을 빌려 오늘의 북한을 진단하고자 한다. 첫째로 3왕실정(三王失政)이다. 진나라와 북한은 서로 3대왕에 이르기까지 국정에 실패를 계속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불시인의(不施仁義)이다. 자고로 왕은 어질고 올바른 정치를 베풀어야 하나 진나라나 북한은 만리장성과 강성대국이라는 무리한 정치를 통해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았다.

 셋째는 민심이실(民心離失)이다. 인명경시의 공포정치로 억압을 하니 민심이 이탈했다는 점에서 말기 사회현상과도 일치한다. 오늘날 진나라를 떠난 백성이나 북한을 탈북하는 주민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신실어(大臣失語)다. 망하는 나라에는 바른 말하는 원로 중신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제 장성택의 숙청은 북한사회에서 반대할 정치세력을 제거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4대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북한은 붕괴의 전주곡이 시작되었다는 개연성이 있다.

지난 12월 3일 장성택 실각설이 나온 이후로 전격적으로 9일 알려진 장성택의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라는 죄명은 북한 정권사의 숙청과정에서 씌우는 일방적인 죄명이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사생활을 살펴보면 그들도 이 죄목에 해당된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이번 사건은 북한에서 언제고 벌어질 권력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성택이 야심만 있었다면 김정은을 숙청시킬 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실기(失機)하고 죄인으로 마감하는 한 인생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생각하게 한다.

 이제 북한의 실세는 군부를 대표하는 최룡해로 전환되었는데 지금 득의양양하게 나가지만 비정상적인 정치구조인 북한에서 그의 숙청도 멀� 않은 수순으로 예견된다. 피의 숙청사로 얼룩진 비정상적인 북한과 김정은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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