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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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려면
원기범 아나운서
  • 기호일보
  • 승인 2013.12.12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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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시 가운데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일부분만 소개해 드립니다.

(전략) 살아있는 동안/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그러나 말이 없이는/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매일매일 돌같이 차고/단단한 결심을 해도/슬기로운 말의 주인이/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중략)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하찮은 농담이라도/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후략)

시구처럼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의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대화는 공격이 아니라 협동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질문을 하면 다른 사람은 대답을 하고, 한 사람이 인사를 하면 다른 사람은 인사를 받는 것과 같이 주는 말과 받는 말이 협동을 이루어야 올바르게 대화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런 원칙이 변형되거나 하면 협동이 깨지면 큰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 대답을 하는 것이 정도(正道)인데 질문에 다른 질문으로 답을 대신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지요.

A : 저 사람 누구예요?
B : 왜요?
A : 물으면 안 돼요?
B : 누가 물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A : 근데 말이 왜 그래요?
B : 내 말이 어때서요?

어떻습니까? 이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 사람이 더 불안해 할 정도이지요? 조마조마합니다. 일촉즉발, 곧 충돌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이래서는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질문을 했는데, 계속 질문으로 받으니까 질문이 공격처럼 들리니까요. 그래서 대화를 하다가 질문이 여러 차례 되풀이되어 나타나면 언쟁이 시작되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질문이 세 차례 이상 이어지면 일단 대화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하고 대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생각해보면 대화하면서 질문하는 것이 사실은 내 말에 대해 (상대방이) 대답을 하라는 요구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무언가 요구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고, 그래서 질문은 역시 부담을 주는 대화 유형입니다. 주는 말이 질문일 때 받는 말은 거기에 대한 대답이어야 더 선호적(허락·긍정·동의)인 것이 되고, 질문에 대해 또 질문하는 것은 공격이 될 수 있다는 것, 꼭 기억해두셔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언급한 대로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크게 보면 선호적인 범주(허락·긍정·동의)의 말과 비 선호적인 범주(거절·부정·반대)의 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사람들은 거절보다는 수용을 더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에 말에 동의해주는 것이 항상 선호적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내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 난 왜 이렇게 잘 잊어버릴까? 아무래도 좀 모자라나 봐”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낮추는 말을 했을 때를 예로 들겠습니다. 이럴 때 “맞아, 내 생각에도 네가 확실히 좀 모자라는 것 같아.” 이렇게 동의 하면 상대방은 정말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선호적 말인 동의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무슨 그런 말을 다 하니? 네가 모자라긴 어디가 모자라? 남아서 걱정이다.”하면서 더 강하게 부정해 주는 것이 선호적인 말이 되겠지요.

가까운 사이에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울수록 오히려 더 서로에 대한 말의 예절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서로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주 사소한 말인데도 자기를 무시했다고 받아들이고 서운해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럴 때 상대방이 속이 좁다거나, 그렇게 받아들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거나 하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잘못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가깝다는 생각에 예의를 지키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질문은 대답으로 받아야 한다.”, “선호적인 말도 내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가까울수록 말의 예절을 더 잘 지켜야 한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가까운 사이에 말로 인해 사이가 벌어진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고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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