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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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과 함께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4.01.14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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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맞이하면서 대단한 결심을 했다. 지난 몇 년간 고민했던 일이라 마무리짓고 나니 홀가분하다. ‘대단한 결심’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만 대단이지 남들이 볼 때는 별 일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호들갑인가 싶어도 세상은 신경조직처럼 복잡하고 미세하게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네트워크 같아 당신 일은 당신네 사정인데 뭘 하든 무슨 상관이람, 신경 쓸 일도 아니네. 딱 자를 수 없으니 인간적이다.

이십 년도 더 전에 인천으로 이사 와서 느낀 첫인상은 비호감이었다. 겨울이 지나도, 봄이 다 가도 바람 부는 풍경이 황량했고, 만수동 지역은 아파트며 도로며 공사하는 곳이 많아 흙먼지가 지천으로 날아다녔다. 남편 따라 오기는 했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인천이 다정하지 않아 곧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숙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주도적 관계맺음에 미숙한 외지인이었던 내가 인천에서 활동무대를 만들고 인연을 만들어 교유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오래 함께 하고 싶다.’ 결정하기까지가 어려웠지 숙성의 세월이 만들어 낸 인연으로 자양분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천이 좋아졌다.

애들이 자라 학업 때문에 서울로 해외로 흩어졌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 몇 명 되지도 않는 가족들이 뿔뿔이 1인가구로 살아가니 서울로 이사와 함께 살자고 여러 번 얘기가 있었다.

선뜻 그러마. 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하고 생활비나 집세를 생각해도 경제적이라 합치자고 의견을 모았다. 막상 몇 군데 집을 알아보고 이사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앞으로 백세를 사는 세대다. 긴 노년을 맞이할 준비로 경제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정서적 선양이 우선이란 생각이 든다. 근래 주변의 몇 분이 돌아가셨다. 깐깐함과 우월감으로 경계를 만들어 좀 괴팍스러웠던 두 분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분들의 지인도 혈육도 예의상 슬퍼했지 남의 일처럼 덤덤해 보였다. 많이 남기기 위해, 높이 올라가기 위해 수많은 전투를 했는데 무공훈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심 애도는 받아야 하는데…. 이생을 떠나는 그분을 생각하니 주변의 반응에 속이 상했다.

노년의 풍요는 따뜻한 가슴에서 나온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은 모두가 소중하고 함께 나눈 시간이 고맙다. 내 노년을 함께 할 자산이다.

 인천이라는 우듬지에 내려앉아 가지를 뻗어 섬세하게 주변을 탐문하고 부드러운 호흡으로 손을 잡고 인연을 만들었다. 세상사에 어눌해 나머지 공부를 했지만 성과에 급급해 조악한 결과물을 만들지 않았으니 이 또한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다.

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긴 세월을 살면서 각자의 인연을 만들어 갈 것이다.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 긴장감을 가져야 좋게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한다. 집착도, 하대도, 복종도, 순수한 마음이 아니다.

이곳 인천에서의 시작은 어설펐고 그 속으로 들어서기가 쑥스러웠지만 진솔한 마음이 통해 인연이 길게 이어졌다. 앞으로도 쭉 내 의지가 작동하는 날까지 인천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한 세대 가까운 시간을 살아왔으니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어 여기에도 저기에도 추억이 묻어있고 쫄깃한 얘깃거리가 무진장 담겨있는 곳이다.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세월을 누비며 살아온 인천을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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