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건태/사회부

 한 젊은 판사가 자신의 SNS 상에 올린 글 때문에 법복을 벗는 일이 있었다. ‘국민법관’이란 호칭을 얻어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서기호 의원(정의당) 이야기다.

우연일까. 그가 2년 전 사법부로부터 판사직을 박탈당한 날에 강형주 인천법원장이 신문사를 찾았다. 지난 18일 신임 인사차다. 사실 강 법원장과 서 의원은 같은 지역 출신에 같은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10살 터울에 공통분모는 그리 많지 않다. 굳이 찾는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둘 다 ‘사법부의 신뢰’를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신임 강 법원장도 취임 일성에서 “법원의 신뢰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며, “법정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이 뱉은 말을 먼저 행동에 옮기려 했는지 몰라도 강 법원장은 부임 후 가장 먼저 지역 언론사를 찾았다.

수행하는 직원 없이 혼자서다. 신임 법원장이 지역 언론사를 예방하는 일은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언론사를 방문해 먼저 시민과 소통하겠다는 말을 꺼낸 걸 보면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실 우리 국민은 법원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최근 한 시민단체의 여론조사에서도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이 사법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한다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법원이 심판한 것을 스스로 뒤집는 판결이 최근 잇따라 나왔다. 2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이 그랬고, 영화 ‘변호인’의 실제 사건인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그랬다.

과거 확정 판결을 다시 뒤집는 것은 법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겠다는데 법원을 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시대적 상황을 핑계로 스스로 판결을 뒤집고 사과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 사회는 ‘무전유죄’에서 ‘무증유죄’란 말까지 나올 만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 지난 21일에는 인천에서 한 60대 남성이 법원 판결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약을 마시고 자살한 일이 있었다.

오죽하면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을까 하는 안타까움보다 지금이 무슨 절대왕정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다.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면 상급법원에 충분히 항소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신뢰다. 법원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2심과 3심이 다 무슨 소용있겠는가.

국민이 법원을 신뢰하고 존경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법질서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또 법관이 법복에 의존한 권위만 내세워서도 안 될 것이다. ‘배려가 곧 소통’이라는 강 법원장의 말처럼 ‘1%의 권력층과 기득권이 아닌 99%의 국민의 편에서 서는 법원’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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