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연합뉴스)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94년 85명의 사망자를 낸 유대인 교민회관(AMIA) 폭파 사건은 이란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태생의 자폭테러범 소행이라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고 미국 일간지 마이애미 헤럴드 멕시코판이 20일 특종기사라는 표시와 함께 1면에서 보도했다.

이스라엘 외교 소식통들은 이달 초 교민회관 사건을 담당하는 아르헨티나 조사관들에게 폭탄테러범이 당시 나이 29세의 레바논 남부 출신 시아파 회교도로 이름은 이브라힘 후세인 베로이며, 고향에서는 테러 공격이 발생한 94년 7월18일 그의 `순교'를 기리는 명판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밝히는 증거를 제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을 목표로 한 최악의 테러로 기록되는 이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10년만에 테러범의 신원이 밝혀지고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이란대사관이 이를 지원했다는 증거가 나옴으로써 향후 사법처리를 둘러싸고 아르헨티나와 이란, 레바논 등 관련 국가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새로 확보된 증거물에 따르면 당시 자폭테러범은 강력한 질산암모늄 폭탄을 밴차량에 몰래 숨기는 방법으로 범행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7층짜리 유대인 교민회관 건물은 무너져내렸다.

이스라엘은 지난 2일 외교적 채널을 통해 아르헨티나 사법당국에 유력한 폭탄테러범 용의자가 후세인 베로라는 이름을 가진 레바논인이라는 점을 밝혀주는 핵심 정보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회관 폭파사건 희생자 유족 대표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마르타 네르세야스 변호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아르헨 당국에 넘긴 전화통화 녹음기록에는 당시 사건 발생 직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베이루트 교외 수시간내 거리에 있는 후세인 베로의 고향 마을 알 우자이로 전화를 건 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베이루트의 이 전화번호로 통화를 건 흔적은 이 통화 이전에는 없었으며, 사건발생 후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네르세야스 변호사는 "우리는 이 통화가 마지막 통화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아르헨 전 경찰관 미겔 알프레도 바르시아도 지난달 28일 증언에서 94년 사건 발생 수일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시간 거리인 카누엘라스의 이슬람 사원에서 후세인 베로를 만난 적이 있는 것으로 말했다고 법정 증언내용을 기록한 네르세야스 변호사는 전했다.

바르시아는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 앞에서 당시 후세인 베로가 자신의 8형제들이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과의 충돌 혹은 자폭테러로 `순교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후세인 베로는 바르시아를 만나 자신은 이전에 자폭테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며 다소 침울한 표정을 지었으며, 유대회관 테러 직전 사원에서 사라졌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네르세야스 변호사는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아르헨 당국은 아르헨은 물론, 브라질, 파라과이의 이민 기록을 샅샅이 뒤져 후세인 베로가 다른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입국했는 지 여부를 조사하고있다.

94년 7월 당시 사건이 발생하자 아르헨 당국은 처음부터 이란을 배후 세력으로 의심했다. 이란은 유대인이나 미국인을 목표로 삼아 차량폭탄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유명한 레바논 시아파 회교도 그룹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증거물 확보로 자폭테러범의 신원과 출신지가 밝혀짐으로써 아르헨 당국과 아르헨의 유대인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활동했던 이란 외교관들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며 사법처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지난달 영국 정부는 유대회관 폭탄테러 사건과 관련해 영국에 체류 중이던 하디 솔레이만푸르 전(前) 아르헨티나주재 이란대사를 체포했으며, 이후 지난 3일과 9일 테헤란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란주재 영국 대사관이 괴한들의 총격을 받는 등 영국-이란 관계가 급속히 냉각돼왔다.

영국 더햄 대학에서 연수중 아르헨티나 정부의 범죄인 인도요청을 받은 영국 당국에 의해 체포된 솔레이만푸르 전 대사는 지난 12일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그의 범죄인 인도 관련 소송이 이미 19일 시작됐다. 다음 공판은 내달 23일로 예정돼 있다.

94년 유대회관 폭파 사건은 그동안 아르헨 당국에 치명적 상처를 안겨주며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아르헨 사법당국이 그동안 밝혀낸 것은 부패한 경찰과 좀도둑, 차량절도 조직 등이 사건에 사용된 폭발물과 차량을 제공했을 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내용이다.

그동안 아르헨 당국의 사건 조사 과정에서 쿠바로 도망간 이란인 망명자로부터 핵심적인 증언이 나오는 등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곳곳에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또 올해 초에는 한 이란 첩보원 출신이 94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메넴이 사건조사를 깊숙이 진행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란으로부터 1천만달러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메넴 전 대통령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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