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채윤 하남경찰서 경무과 경장

 요즘 극장가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아한 거짓말’, 영화는 밝고 불평 한마디 없는 배려심 깊은 여중생 ‘천지’가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것 같은 딸 혹은 동생이었던 천지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떠난 천지의 비밀을 찾아가는 이 영화는 학교폭력(왕따)이라는 다소 예민하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극 중 천지가 그러했듯, 우리 아이들도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안에서 진실된 소통을 나누지 못하고 정말 힘들고 외롭고 슬픈 순간조차 애써 괜찮다는 말로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세심히, 그리고 천천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비단 영화적 허구가 아니다. 2011년 12월 대구의 중학생 A군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지난해 3월 또다시 학교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던 경북 경산의 고등학생 B군이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는 비극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B군이 유서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학교폭력은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고, 더욱이 요즘은 금품을 빼앗거나 강제로 심부름을 시키는 등의 전통적인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대신 SNS의 발달과 스마트폰 보급의 확대 등으로 학교폭력이 사이버공간으로 숨어들면서 더욱 은밀해졌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관이 우리의 눈과 귀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학교폭력의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메시지가 오면 표정이 어둡게 변하거나, 우리반 친구 누가 왕따를 당한다는 얘기를 한다는 등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얼마든지 그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다.

지난해 2월 6천33건이던 학교폭력 신고가 3월 개학과 함께 1만575건으로 늘었다는 경찰청 117학교폭력신고센터의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 지금 3월,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이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설렘으로 부풀어 있어야 할 이때, 사실 학교는 서열 싸움에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폭력, 왕따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고 무뎌진 단어가 됐지만 그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어른들은 이 시대의 ‘천지’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애써 괜찮다는 ‘우아한 거짓말’로 버티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없는지 진실한 관심으로 살피고,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누고 극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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