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스포츠 발전을 위한 인천시의 아낌없는 지원과 채건수 감독의 노력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2014년 3월 26일, 한국과 3시간 30분의 시차를 지닌 인도양의 작은 섬 스리랑카.

스리랑카 올림픽위원회(NOC)와 핸드볼협회가 한국인 체육지도자를 위해 마련한 특별한 송별회가 수도 콜롬보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열렸다.

이날의 주인공은 꼭 2년 전인 2012년 3월, ‘OCA-Incheon Vision 2014 Program(아시아올림픽평의회-인천 비전 2014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된 핸드볼 지도자 채건수(42)감독이다.

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이자 송별회의 좌장인 헤마시리 페르난도(Hemasiri Fernando·67)씨는 “채 감독은 그간 스리랑카를 거쳐 간 그 어떤 외국인 지도자들보다 열정적으로 지도했다”며 “이별이 아쉽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인천의 지원과 채 감독의 노력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 감독은 NOC가 준비한 감사패를 받아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더 바탕을 다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만큼 후회는 없다”고 미소지었다.

인천시와 OCA가 아시아 지역의 스포츠 균형발전을 위해 설립·운영한 ‘Vision 2014 Program’이 스포츠 약소국인 스리랑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스리랑카 도입 5년이 채 안 되는 ‘핸드볼’이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채 감독을 위시한 지도자 교육과 청소년 선수 육성으로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해도 기본 룰조차 인지하지 못해 격투기를 방불케 했다는 스리랑카의 핸드볼은 현재 서남아시아게임(SAG)의 메달을 기대할 정도로 성장했다.

스리랑카 파견기간 동안 채 감독은 핸드볼 지도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지도 코칭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심판 역량 부족으로 인한 경기 운영 미숙을 개선하기 위해 ‘심판 강습’에도 주력했다. 무려 200여 명에 가까운 지도자와 심판이 분기별 이론·실기교육에 참여했고, 현재는 채 감독의 교육을 이수한 심판들만이 경기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꿈나무 육성도 채 감독이 주목한 핸드볼 활성화 방안의 하나다. 채 감독과 스리랑카 내셔널 코치인 세나라스 세나나야카(52)씨는 푸틀람·케골·나프라푸나 등 스리랑카 전역을 돌며 초·중·고·유소년 팀 지도와 핸드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2012년 기준 20개 팀(150여 명)에 불과했던 유소년 팀은 1년 사이 50개 팀(800여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스리랑카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3년 뒤 자국 한반도타에서 개최되는 ‘2017 아시아 유스 게임’에 핸드볼을 주력 종목의 하나로 삼고 메달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채 감독은 ‘스리랑카 국가대표 핸드볼 팀’을 창설해 국제경기가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업 선수가 없는 상황인 만큼 감독은 육·해·공군과 교도공무원 클럽팀에서 15명의 선수들을 뽑아 대표팀을 구성했고, 이들의 정신 무장부터 시작해 기량을 키워 나갔다.

특히 국가대표 선수들은 채 감독과 함께 2012년 11월 한 달간의 인천 전지훈련으로 특별한 경험을 쌓았다. 스리랑카 현지에서 만난 선수들은 “인천의 실업팀과 유소년 팀들과의 경기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입을 모았다.

선수들은 현재 ‘2014인천아시안게임’과 ‘서남아시아게임’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뜨거운 의지를 불태우며 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채 감독은 떠나지만 그간의 훈련 성과는 오는 9월 대한민국 인천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에서 그 빛을 발할 예정이다.

실내 운동임에도 시설 부족으로 종종 야외 훈련을 감내해야 하고, 직업군인 또는 공무원이면서 국가대표라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인천아시안게임에서 1승을 거두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외치는 선수들이 지난 2년간의 훈련으로 얻은 것은 바로 ‘투지와 자신감’이다.

#채건수 감독, 핸드볼 지도자 파견 일정을 마치며

   
 

“실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서남아시아게임이 미뤄진 탓에 국제경기에서의 전력을 확인하지 못했거든요.”

‘OCA-인천 비전 2014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리랑카에 파견, 지난 2년간 스리랑카 핸드볼 발전을 위해 땀을 흘려 온 채건수 감독은 지난 3월 25일 귀국 4일을 남긴 시점에서도 떨치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핸드볼의 메카 인천에서도 손꼽히는 지도자인 그가 어떤 목표를 갖고 스리랑카에 왔는지를 알고 있다면 자연히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이야기다.

채 감독은 “20년간 인천지역 초·중·고 지도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반복되는 패턴에 조금은 회의가 들었다”며 “그즈음의 스리랑카 파견 제의는 ‘언젠가는 오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내 바람과 닮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리랑카 현지의 상황은 그의 생각보다 심각했다. 핸드볼이라기보다 격투기에 가까운 경기 운영과 심각한 야유가 난무하는 관중석은 다시 떠올려도 상당한 충격이라는 것.

급히 스리랑카 핸드볼협회와의 논의 끝에 지도자 코칭 프로그램과 심판 교육에 돌입했고, 가까스로 뽑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기술과 정신력 강화를 중점으로 한 훈련을 시작했다. 변화는 서서히 시작됐지만 작은 변화에도 채 감독은 커다란 보람을 느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 중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스리랑카 전역을 돌아다니며 핸드볼을 홍보한 일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을 데리고 인천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일은 두고두고 추억할 거리들이다.

채 감독은 “인천조직위가 지원을 결정해 9명의 인원이 전지훈련을 갈 수 있었다”며 “나도 나지만 선수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목표를 부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고 소회했다.

그럼에도 메달을 목표로 땀을 흘려온 서남아시아게임의 개최가 2년간 불발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메달을 딴다면 스리랑카 정부에서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으로 선수들과 땀을 흘렸다”며 “열악한 훈련 환경과 장비 지원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훈련의 성과를 증명할 길이 막혀 한동안 답답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제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들과 그간 가장의 짐을 지운 아내에게 돌아가지만 채 감독은 끝까지 스리랑카 핸드볼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다.

채 감독은 “선수들이 지난 2년간의 훈련을 발판삼아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천AG에서 보여 줬으면 좋겠다”며 또 “앞으로 스리랑카 정부가 깊은 관심으로 선수들이 사명감을 갖고 코트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구마라 대표팀 주장·세나나야카 코치 도전 계속

   
 

스리랑카 핸드볼 국가대표 팀의 주장인 구마라(25)와 내셔널 코치이자 니곰보 교도소의 소장인 세나나야카(52)는 채건수 감독과 함께했던 지난 2년 동안의 시간이 ‘꿈만 같았다’고 입을 뗐다. 채 감독이 오기 전까지 인터넷 경기 동영상을 보고 핸드볼을 배웠던 선수들은 기초부터 세심한 동작 하나까지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구마라 선수는 “인터넷을 통해서는 배우는 게 한계가 있고 피드백도 어려워 거의 럭비 규칙과 섞어 운동을 해 왔다”며 “채 감독이 가르쳐 준 동작과 기술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선수들 모두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84㎝의 큰 키에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강한 체력을 가진 구마라 선수는 특훈받은 개인기까지 갖추게 돼 국가대표 선수 중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하게 됐다.

대표팀이 인천아시안게임의 1승을 목표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 구마라 선수는 “핸드볼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이라며 “지금은 미약하지만 계속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만난 세나나야카 코치 또한 ‘OCA-인천 비전 2014 프로그램’의 지도자 파견에 대해 “핸드볼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던 이곳에 핸드볼이 생활체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채 감독과 함께 스리랑카 전국 곳곳을 순회하는 ‘찾아가는 핸드볼 교실’을 통해 기본 기술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핸드볼 경기의 재미와 유익함을 알려온 당사자다.

세나나야카 코치는 “2년 전만 해도 핸드볼에 대해 아는 국민들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다”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수년 뒤에는 크리켓과 같은 국민 스포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간 함께 고생한 채 감독이 떠나게 돼 많이 아쉽다”며 “앞으로 우리는 채 감독과 했던 것처럼 각 지역의 학교나 관공서, 스포츠센터 등을 찾아다니면서 핸드볼을 알리고 미래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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