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립니다. 말 한마디가 난마처럼 얽혀 있던 관계를 푸는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더 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주변을 좀 돌아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기분을 좋게 하는 화법의 주인공이 있는 반면 왠지 만날 때마다 기분 나쁘게 하고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유형의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현재 주고받는 말 속에 대화 당사자 양방의 미래 관계를 예측해 볼 수 있는 가늠자가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자신의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에 관심없는 사람은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화법을 조금만 바꾸면 훨씬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제조건입니다. 이것은 대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정중하지 않은 표현은 최소화하고, 정중한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 그것이 바로 저명한 언어학자 지오프리 리치(Geoffrey Leech)박사가 주창한 정중어법입니다. 서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말을 주고받는다면 불필요한 분쟁은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정중어법에는 ‘요령의 원리’와 ‘관용의 원리’, ‘찬동의 원리’, ‘겸양의 원리’, ‘동의의 원리’ 등 다섯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생각해 본 ‘요령의 원리’란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는 표현은 최소화하고, 혜택을 베푸는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요소인 ‘관용의 원리’는 요령의 원리를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자기한테 혜택을 주는 표현은 최소화하고, 부담을 주는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주는 혜택은 가장 적게, 자신이 가지는 부담은 가장 크게, 그러니까 대화 상황에서 상대방이 지게 될 짐을 자기 자신이 대신 지라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은 상황에서 “왜 그렇게 소리가 작아요?”라거나, “좀 크게 말씀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이 말을 작게 해서 잘 듣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상대방한테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못 들은 것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혜택을 주고, 상대방에게는 부담을 주고 있는 경우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제가 부주의해서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말을 못 들은 책임을 자신의 부주의 탓으로 돌려서 자신의 부담을 최대화하는 대신 상대방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지요? 이렇게 자기 짐은 크게 하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최소화하는 것이 정중어법 중 ‘관용의 원리’입니다.

세 번째는 찬동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트집을 잡는 표현은 최소화하고, 상대방을 칭찬하고 맞장구치는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의를 듣고 나올 때 강의가 좋았을 경우에는 “강의가 퍽 좋았습니다. 정말 잘 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방을 칭찬하는 표현을 최대화해서 찬동의 원리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강의가 별로 좋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지 않았으면서 좋았다고 거짓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오늘 강의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나오는 것이 비난하거나 트집 잡는 표현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찬동의 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평이나 비난하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더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본성적으로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꼭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정리하면 부담은 내가 가지고 혜택은 상대방에게 베푸는 ‘관용의 원리’와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하는 것은 적게 하고 칭찬하는 것은 크게 하는 ‘찬동의 원리’는 수준 높고 교양 있는 대화법인 정중어법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관용의 원리와 찬동의 원리를 염두에 두고 대화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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