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버그」(원제 Blind spot)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마인드 버그란 ‘사물을 인식하고 기억하고 추론(推論)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뿌리 깊은 사고 습관이 일으키는 사고의 오류(誤謬) 및 정신의 오작동’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사고를 막는 ‘마음의 벌레’인 셈입니다. 공정한 판단을 하는 데 방해되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인 고정관념(固定觀念)이 생각보다 꽤 많더군요.

이 책의 저자인 앤서니 그린월드(Anthony Greenwald)박사와 마자린 바나지(Mahzarin Banaji)박사는 ‘내 마음은 내가 잘 안다’는 평범한 명제에도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의 정신은 그 사람을 둘러싼 문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 특정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물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편견(偏見) 없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참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존중의 대화법을 주목해야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특별한 존재로 대우한다는 것입니다. 대화에서 존중이란 바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관점을 수용(收容)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존중의 대화법 중 ‘요령의 원리’와 ‘관용의 원리’, ‘찬동의 원리’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요약하면 ‘요령의 원리’란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는 표현은 최소화하고 혜택을 베푸는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이고, ‘관용의 원리’는 요령의 원리를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인데 자기한테 혜택을 주는 표현은 최소화하고 부담을 주는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찬동의 원리’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트집을 잡는 표현은 최소화하고, 상대방을 칭찬하고 맞장구치는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겸양(謙讓)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찬동의 원리를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것인데 자신을 높이는 말은 최소화하고, 낮추는 말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계시네요”라고 말할 때 “아니에요. 정말로 과분(過分)한 말씀이십니다”라고 받았다면 그것은 칭찬에 대해서는 부정함으로써 겸양의 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칭찬을 받았을 때 “천만에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등으로 부정하는 말을 하는데 이것을 겸양의 원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서양 문화권에서는 칭찬을 해 주면 감사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는군요.

다섯 번째는 동의(同意)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상대방하고 일치하지 않는 표현은 최소화하고, 상대방하고 일치하는 표현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의견이 일치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갈등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끼리라도 언제나 의견이 일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의의 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여기서 중요한 개념 정리가 필요합니다.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것이 대립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의견이 같지 않다고 해서 “그게 아니지”라거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어떻게 나랑 정반대로 생각하니?”하는 식으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그렇게밖에 생각 못해?”라는 식으로 비난까지 포함된 반응을 들으면 상대방은 기분이 상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지요. 이렇게 대립을 표면화시키지 말고 먼저 동의를 해서 상대방하고 같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 다음에 일치하지 않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화법(話法)이 됩니다.

 예를 든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동감이야. 그렇지만 이건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동의의 원리를 지켜 말하면 불일치하는 내용도 대립 없이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정중어법 중 겸양의 원리와 동의의 원리를 잘 생각하며 대화하는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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