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근대사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은 청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와 통상 및 교류를 꺼려해 쇄국정책을 단행했다. 당시 청나라는 망해 가는 중이었다.

비슷한 시기 옆에서는 사카모토 료마 등 하위무사 계급이 주도하는 개혁세력들이 270년 된 에도막부를 붕괴시키며 일왕 메이지를 정점으로 하는 유신시대를 열었다.

개국을 통해 일본은 순식간에 강대국 반열에 올랐으며 우리는 역사의 후유(後遺)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한의 역사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쇄국에서 시작됐다.

지난 3월 11일 캐나다와 FTA가 타결됐다. 2004년 4월 칠레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46개국과의 FTA가 발효 중에 있다. 인도와도 비슷한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를 맺었다. 통한의 과거를 보상하려는 듯 현재까지 개방의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 무역의존도(2013년 3분기)는 105.7%로 세계 1위다. 수출 규모는 4년 연속 세계 7위를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메모리 반도체, LCD디스플레이 점유율은 세계 1위이고 조선 2위, 석유화학 4위, 자동차 5위, 철강 6위를 기록하고 있다. 무역 없는 생존이 불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기계, 컴퓨터 등 10대 품목이 전체 수출의 85%를 넘는다는 점이다. 소수의 기업과 품목에 편중된 구조다.

솔직히 양자간 무역협정인 FTA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돌연변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명분 하에 협정국 내 경제질서와 경제력을 인위적으로 바꿔 버렸는데, 피해자는 다름아닌 내수에 의존해 온 농민, 자영업자, 중소기업 종사자 등 대다수 국민이었다.

이 광란의 게임이 번성한 이유는 누구든 일단 플레이를 시작하면 안 하는 쪽이 불리해지는 데 있기 때문이다. 소비의 질, 제품의 경쟁력 모든 면에서 불리해진다. 수출 비중이 높은 경제구조는 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우리처럼 내수가 한정돼 있거나 감소되는 처지에선 수출시장을 넓히는 FTA를 계속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FTA 허브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계획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는 신선한 발상이다. 세계가 한국을 통과하는 FTA 파이프로 연결된다면 비협정국가 간 제조·물류의 중개기지 역할을 담당할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온다. 새로운 투자와 고용의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FTA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긍정과 부정이 혼재(混在)하는데 관심을 갖고 집중할 부분은 FTA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위험을 예방하고 손실을 치유하는 것이다.

다행히 농·축·수산업 분야는 피해 보상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인 편이고 손실의 계량화에서도 별 무리가 없다. 문제는 수출경쟁력이 없는 내수의존형 중소기업과 그 종사자들이다. 기술적·재정적 손실 보전이 쉽지 않다.

이미 과잉 공급과 수익 악화로 고전하는 자영업자 대책은 더욱 난감하다. 가뜩이나 취약한 이들은 향후 대량 폐업과 조정을 거치며 소비 감소와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될 것이다. 1996년도 OECD 가입 후 어설픈 자본시장 개방과 부실한 관리로 IMF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중국의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엔저까지 겹쳐 경상수지가 급속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러한 변화와 위험이 오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우리는 무지했었다. 「블랙스완」의 저자 탈레브의 주장처럼 큰 위험은 알고 있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으로부터 온다.

역설적으로 큰 기회도 ‘모르는 영역’에서 시작될 수가 있다. 정부는 FTA종합지원포털(www.FTAhub.go.kr)을 통해 피해 보상과 지원대책을 안내하고 있다. 유심히 살펴보고 업종이나 업태를 전환할 기회가 있으면 포기하지 말고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앞에 펼쳐질 치열한 경쟁 안에 기회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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