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현린 논설실장

1912년 4월 15일 밤, 칠흑같이 어두운 북대서양 한복판을 항해하는 배가 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크기와 안전성을 자랑하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거대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2천200명의 승객을 태웠던 이 선박은 침몰로 인해 1천500명이 사망하고 겨우 700명만이 구조됐다. 마침 근처를 항행하던 한 척의 배에 “우리는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는 타이타닉호로부터 조난 무선전신이 수신됐다.

급히 달려왔으나 희생이 너무 컸다. 그나마 전체 승객 ⅓ 정도의 생명만이라도 구조한 것은 무선통신 발달의 개가였다. 무선통신의 유용성을 세계에 널리 인식시키게 된 사건이 바로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이라고 통신발달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후 전 세계 각 국가는 ‘타이타닉의 교훈을 잊지 말자’며 해양안전에 온 힘을 쏟아오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 강국 소리를 듣는 국가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툭하면 해양사고를 일으키곤 한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열이틀이 지났다. 대한민국에 사는 어른이면 모두가 다 공범이고 죄인이다. 해난사고의 경우 선장과 선원은 배와 운명을 함께해야 하는 신분이다. 구런데 세월호 선장을 위시한 선원들은 앞을 다퉈 침몰 선박에서 탈출했다.

승무원들은 객실에 있던 승객조차 대피시키지 않고 저 살려고 구명장비를 챙겨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바빴다. 우리에게 위기관리 능력이라곤 아예 없었다. 이것이 부인 못할 우리의 현주소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느 한 분야 가릴 것 없이 총체적 부실이다. ‘수학여행안전대책 의무화법’이 이제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해 말 발의된 학생들의 단체활동 안전대책 수립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국회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서둘러 의결한 것이다.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러운 4월이다. 한 외신은 한국에서의 해난사고는 시기가 문제였지 위험성이 내포된 지는 이미 오래라고 전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아들딸들이 저 차디찬 바닷속에 있는데 정치권은 철없이 책임 공방을 벌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 모두의 책임인데 누가 누구를 탓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정치권이다.

어른들의 무지에서 희생된 우리 아이들이다. 굳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들추지 않아도 국가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뒷전으로 하고 무엇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침몰 10여 일이 지났건만 상황판은 첫날 그대로인 ‘구조 174명’에 멈춰 있다. 국가적 유기치사 내지는 살인행위와 다름없다.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먼저 뛰어내리고 뒤이어 선원들이 앞을 다퉈 빠져나오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우리에게 과연 내일이 있는가? 우리 민족에게 ‘어제’, ‘오늘’, ‘내일’ 중 유독 ‘내일(來日)’만이 한자어라고 적시, 우리에게 미래가 없는 민족이 아닌가 하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할 때 ‘정의(正義)’는 이뤄지는 것이다. 제자리에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가 이처럼 크나큰 참사를 불렀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어른들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나는 승무원이다. 너희들 다 탈출시키고 맨 나중에 나갈 테니 어서 탈출하라!”고 마지막 탈출명령을 내린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의 승무원 고(故) 박지영 씨야 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다. ‘세월호’의 진정한 마지막 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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