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끝까지 추구하는 자연상태에서는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을 뿐이고,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이리’이기 때문에 자기보존마저도 위태롭게 된다고 봤다.

따라서 각자의 ‘자기보존의 이익(생명·신체·자유·재산 등)’을 위해서 계약으로써 국가를 만들어 각자의 자연권, 즉 자기보존권(각자가 자기보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할 자유)을 국가에 양도해 복종하게 된다고 했다.

 말하자면 홉스는 국가 설립의 목적이 자연상태를 극복하는 것, 즉 각종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에 있다고 봤던 것이다.

홉스가 「리바이어단(Leviathan)」이라는 저서에서 전제군주제(專制君主制)를 이상적인 국가 형태라고 주장한 것을 두고 후대의 학자들이 비평을 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가 전제군주제를 옹호한 배경에는 이러한 ‘안전국가(Sicherheitsstaat) 사상’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현실적인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봤던 것이고, 따라서 “군주에 대한 시민의 복종의무는 그가 시민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 한에 있어서만 계속되며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즉, 홉스는 사회계약이 구성원들의 생명·신체·자유·재산 등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되는 것이고, 이러한 계약목적이 달성될 수 없을 때에는 그 계약은 무효가 돼 국가는 소멸되며 자연상태로 되돌아오게 된다고 봤던 것이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로 인해 다수의 어린 고교생들을 포함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국민들이 엄청난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무리한 출항, 화물 과적, 안전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등 여러 가지 진단과 추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고령의 배를 수입하고 증축까지 가능했던 것은 이명박정부 시절 규제 완화가 일조했다. 2009년 이전 20년이었던 여객선 선령 제한이 30년으로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라는 지적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2012년 9월 일본에서 (이미 수명을 다해 퇴역한)18년이나 된 배를 수입해 개조 작업을 해 선박의 중량이 당초 6천586t에서 6천825t으로 239t이나 늘었고 탑승 정원도 740명에서 921명으로 181명이나 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객선 선령 제한의 규제 완화로 인해 2013년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20년 이상 된 여객선이 67척(30.9%)에 이르러 또 다른 사고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15년 이상된 노후 선박의 수입 비중이 선령 완화 시행 전후로 29.4%에서 63.2%로 급증했다는 보도도 있다.

더욱이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한 규제 완화를 정부 각 부처에 주문함에 따라 해양수산부도 소관 규제 1천491건 가운데 경제규제에 해당하는 1천125건의 12%를 줄일 것을 국무조정실로부터 요구받은 상태인데, 이들 규제를 감축하는 과정에서 안전과 관련한 규제가 또다시 완화되지 않나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그러나 안전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함에 있어서는 제발 더욱 신중해 주기를 요청하고 싶다.

그리고 규제완화정책이 필요하다고 해 마치 모든 규제를 ‘죄악’으로 간주하는 듯한 획일적인 드라이브를 경계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완화해야 할 규제는 ‘불필요한 규제’, ‘불합리한 규제’, ‘비현실적인 규제’인 것이지 ‘필요한 규제’, ‘합리적인 규제’, ‘현실에 합당한 규제’마저도 깡그리 없애거나 완화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1차적인 존재 목적과 이유가 ‘국민의 안전 확보’에 있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번의 대형 사고를 당해 온 국민이 우울해진 상황 하에서 약 500년 전 홉스가 강변(强辯)했던 ‘안전국가 사상’을 다시 떠올리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어린이날·어버이날에 더욱 슬픔이 커질 희생자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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