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도태되고 우월한 유전인자는 생존·진화해 나가는 것이 자연의 질서다. 먹이사슬 간 수요와 공급의 과잉은 이내 조정 과정을 거치는데, 그 조정 대상은 바로 약자들이다.

동물의 왕국엔 고령화 문제도 없다. 먹잇감으로서 생태계에 즉시 기여하기 때문이다. 인간사회는 좀 다르다.

윤리와 정의의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약자는 보호해야 된다는 류의 사고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주요 기준이다. 동일한 원리가 시장경제에도 적용된다.

통제가 어려운 큰 경제권력은 정부의 간섭, 즉 정의란 것이 필요한데 공정거래법도 그 중 하나다. 심지어 23조 1항 ‘거래상 지위 남용의 금지’는 소비자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고려를 넘어서, 거래 상대방(경제적 약자)에게 끼친 영향까지 보며 부당성을 판단한다. 소위 ‘갑을관계법’으로 통칭되는 하도급법, 가맹점사업법, 대리점법 같은 특별법이 그것이다.

 이 중에도 가장 뜨거운 이슈는 대형 유통점과 소매 자영업체 간의 헤게모니 논쟁이라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 물결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①유통법으로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진입을 제한하고 ②상생법을 통해 인위적 사업조정을 시도하며 ②대형 유통점의 영업시간과 의무휴업일까지 지정하고 있다.

미·영·일에는 아예 없는 제도이며 독일·프랑스는 일요일 휴점 원칙이 존재해도 노동법에 근거한 것이지 주변 자영업자들에 대한 보호 목적이 아니다. 최근의 조치들이 공정한 경쟁을 훼손시켜 걱정스럽지만, 그나마 수혜자가 경제적 약자인 탓에 여론의 부담은 별로 없어 보인다.

돌이켜보면 자영업을 붕괴시킨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가 1996년 유통시장 개방을 통한 대형 마트 위주의 시장 재편기이고, 두 번째는 2009년 무차별적으로 확대된 SSM 진출이다. 만약 당시 대기업의 대형 마트 진출 건에 대해 계속 백화점이나 하도록 막아 놨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처럼 헌법이나 훼손하는 골목상권 보호법 없이도 자영업 계층은 아마도 건강한 중산층의 토대가 돼 있을 것이다. 안타깝다. 월마트·까르푸 견제하려다가 당황스럽게도 토종 공룡 몇 마리가 생태계 씨를 말린 꼴이 돼 버렸으니…

만시지탄이나 지금이라도 공정경쟁에 대한 훼손은 최소화하면서 자영업을 위한 실효적 조치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다윗들을 보호할 것인가? 답은 명료하다. 더 이상 골리앗이 세지지 않도록 억제하면서 다윗들을 모아 골리앗과 같은 힘을 키워 준다.

이런 면에서 대형 유통점과 SSM의 추가 설립은 제한돼야 한다. 허용할 경우 ‘규모의 경제’로 인한 유통업계 양극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공정경쟁의 기회는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유통업체 자신도 이제 내수시장의 과실은 국민에게 돌려주고 해외로 방향을 전환하는 상도(商道)가 절실한 상황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와 별도로 자영업은 스스로의 협업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그 첫째가 수평적 공동 마케팅 시스템 운용이다. ‘같은 상권 내 동일 업태’에 종사하는 업자들 간 협동조합 구축을 통해 이런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네 한정식집에서 식사하고 적립한 포인트를 근처 미용실에서 헤어커트할 때 사용하는 식이다.

 둘째는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구매·보관·배송할 수 있는 수직적 시스템 구축이다. ‘서로 다른 지역상권이지만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업자들 간 상인연합회 구축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업태별 수평적 협업과 업종별 수직적 협업의 조직화, 이것이 바로 생존 전략의 핵심이다. 이래야 ‘규모의 경제 및 효율성’ 면에서 대형 유통점·SSM과의 공정한 경쟁이 그나마 가능해질 수 있다. 정부, 지자체 그리고 자영업자 간 삼위일체의 노력이라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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