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떡 먹자
상태바
쑥떡 먹자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4.05.13
  • 1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햇살 고왔던 지난 토요일,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업실에 있다고 와서 쑥떡도 먹고 차도 마시자고 부른 것이다. 지인은 강화도에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가지고 있는지라 주말농부로 먹을거리를 키운다. 밭에서 나는 작물을 골고루 심어 육류를 제외한 대다수의 식재료를 자가 공급하고 있다.

업무 과중으로 스트레스가 오거나 머리 복잡한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도 심고 뿌려서 거름 주고 물 주고 키우는 농작물은 정직해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시절에 맞춰 씨 뿌리고 돌보다가 밭두렁에 앉아 쉬고 있으면 지천으로 돋아나 쑥밭이 된 밭두렁과 둔치에서 쑥향이 바람 타고 솔솔 풍겨오면 그리 마음이 편안해져 저쪽 세속의 세상이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된다며 웃는다.

손 가는 수고도 없이 저절로 자라 쑥쑥 크는 쑥도 봄나물도 신통하다며 철따라 나고 지며 제 역할에 충실한 자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된다고 전원생활의 장점을 장광설로 풀어내 놓는다.

사설이 좀 길다 싶었는데 아니나 달라, 고추냉이 우리 친구 정 여사가 대번에 톡 쏜다. “참말로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밭떼기랑 폼나는 전원주택이랑 널찍한 대형 아파트랑 돈까지 잘 버는 가정적인 남편이랑 뭐하나 시빗거리가 있어야 속이 쓰리지. 참말로 끓어도 끓어도 내 속은 뜸들일 시간도 안 주고 볶기만 하는데 용케 숨 쉬고 있는 것만도 신기하다니까.”

얼굴 붉어지면서 민망해하는 지인에게 내 말이 고까우면 너는 친구도 아니라고 쐐기를 박는다.

지인은 작업실까지 따로 가지고 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도예 작품을 만들거나 창작하는 작가에게 작업실은 꼭 가지고 싶은 장소다.

지인의 작업실은 단독주택을 통째로 개조해 만들었다. 단독주택지라 큰길에서 안쪽 골목으로 좀 들어간 곳이라 그런지 조용하고 한가롭다. 대문 옆에 키 큰 자두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바람결 따라 잎사귀끼리 부비는 소리가 운치 있는 곳이다. 꽃잔디가 한창 예쁜 화단 옆에 벤치와 탁자가 놓여 있어서 차를 마시기에 그만인 장소다.

조금 전 날카로웠던 정 여사의 설전이 시무룩해져 다들 말이 없는데 방금 내린 원두커피를 머그잔에 담아서 집주인이 내왔다. 화창한 봄날 바람 솔솔 나무그늘 밑 벤치에 앉아 마시는 커피도 나름 운치가 있다. 마음도 풍경도 한가롭다. 유실수 몇 그루가 둘러서 있는 화단엔 꽃잔치가 절정이다. 앙증맞고 요염하고 수줍고 원숙하고 크기와 색깔과 모양에 따라 봄꽃은 한껏 시절을 누리고 있다.

별 생각 없이 속을 내보인 집주인도, 팍팍한 현실과 비교돼 친구에게 냉소를 날린 친구도, 덩달아 어색해진 나도 한참을 말없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봄볕에 몸을 맡기고 차를 마셨다.

오늘 지인이 우리를 오라 한 것은 새봄부터 지난주까지 강화도 밭두렁에서 뜯어다가 삶아 냉동해 놓은 쑥으로 쑥떡을 만들어 나눠 주려고 부른 것이다.

지인의 작업실이 있는 이 동네에 오래된 떡집이 있는데 기계로 훅 갈아서 하지 않고 쑥을 절구로 찧어서 떡을 만드는 떡집이라며 별미 쑥떡을 맛보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한다. 한 시간을 절구로 찧어 만들었다는 쑥은 향내가 짙고 잎맥이 남아 있어서 곱지는 않아도 입에 착 감기게 맛이 있다.

두루뭉실 납작하게 만든 쑥떡을 냉동실에 얼렸다가 먹으라고 제법 많이 싸 준다. 나도 정 여사도 돈 많은 친구 덕분에 입이 호강한다며 웃었다.

공치사 속에는 예의 깍듯한 세련보다 손 많이 가고 번거롭지만 쑥맛을 제대로 살려 주는 절구로 찧은 쑥떡처럼 투박해도 마음 깊은 정을 길어 올릴 세월을 공유해 온 아줌마의 우정이 녹아 있어서라고 위안해 본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