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자신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장에서 “사사건건 보도 개입을 한 길환영 사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발생한 파문이 뉴스방송의 파행마저 불러일으키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 전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윤창중 사건을 톱뉴스로 다루지 마라, 해경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마라 등등의 지침들을 내렸고, 청와대 홍보수석이 중요 사안과 관련해서 자주 전화를 해 왔었다고 한다.

만일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사안이다. 공영방송의 사장이 구체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보도 개입을 했다는 것이고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니, 이러한 주장은 (사실 여부가 가려지기 이전이지만)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면 국민들은 왜 이 사건을 충격적인 사안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그것은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 실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자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는 민주정치국가라 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없는 데에는 세계관적 다양성이 있을 수 없으며 민주정치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1970~80년대에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됐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정치권력의 통제에 의해 언론이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국민들은 소위 ‘카더라방송(이를 ‘유비통신’이라 부르기도 했었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어렵게 구한 외신 기사를 숨기며 돌려볼 수밖에 없었다(타임·뉴스위크 등 외국 언론매체에 실린 한국 정치 관련 기사는 국내에 배포될 때 삭제되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몸담은 학생들은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손으로 쓴 조악한 ‘지하신문’을 만들어 ‘민주화운동 소식’을 극비리에 전파하기도 했었다. 대학생 대여섯 명 이상이 캠퍼스 잔디밭에서 어떤 모임이라도 가질라치면 혹시 불청객(사복경찰)이 엿듣고 있는지 주변을 살펴야 했다.

그리고 수사기관(검찰과 경찰)과 법원에서는 진실을 듣고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유언비어를 퍼뜨린다’고 해 ‘긴급조치 위반’의 죄목을 달아 엄중히 형사처벌했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이 독립지사들을 탄압하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무지막지한 탄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KBS 사장이 자주 보도 개입을 해 왔고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주장이 ‘전 보도국장’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으니, 국민들을 충분히 경악시킬 만하다. 많은 국민들이 과거 살벌했던 언론 통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괴물 같은 독재권력의 환영(幻影)이 되살아난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KBS 길환영 사장은 조속히 퇴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KBS 기자협회가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고 하고, 노조원들도 98%가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하니, 길 사장은 (이미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것은 물론이고)사장으로서의 체통과 권위, 리더십의 기반마저 송두리째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편, 보도 개입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길 사장은 응분의 법적 책임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방송법은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제4조), 이 규정을 위반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05조).

국민들은 언론 자유 수호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들만의 자유가 아니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자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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