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건태 사회부장

현상금 5억 원.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73)전 세모그룹 회장을 지명수배하면서 검찰이 내건 신고 보상금이다.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과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걸린 현상금의 10배다. 단연 역대 최고 금액이다. 검찰은 유 씨에게 배임과 횡령, 조세 포탈 외에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추가했지만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 6개월간의 도피행각을 벌였던 신창원에게 5천만 원의 현상금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

이쯤에서 지난해 일본에서 흥행해 최근 국내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짚의 방패’란 영화가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화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부호가 자신의 어린 손녀를 살해한 범인을 죽여 주면 10억 엔(약 100억 원)을 주겠다는 광고를 신문에 실어 빚어진 사회 혼란을 그렸다. 전 국민을 상대로 살인 청부를 한 뒤, 더 나아가 살인 미수에 그친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주고 일자리까지 제공하자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은 전 국민의 표적이 된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이미 ‘돈’ 앞에 무력해진 공권력은 볏짚으로 만든 방패에 불과하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 준다.

이 같은 영화 속 황당한 설정이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너무 지나친 비약일 수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과 분노에 차 있는 상황에서 유 씨에게 역대 최고의 현상금을 내건 검찰이나, 또 이들을 보호하겠다며 세월호 진실 규명에 똑같이 5억 원의 보상금을 내겠다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모습에서 자꾸 영화 속 장면이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현상금 액수를 올려 유 씨 일가를 어느 정도 압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겠지만 그에 따른 국민적 혼란과 수사의 혼선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씨를 쫓고 있는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에는 최근 그가 머물렀던 여수·순천뿐만 아니라 전북과 충남, 강원까지 전국에서 그를 봤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도 덩달아 유 씨의 ‘신출귀몰’한 도피 행각을 보도하자 그를 우상화하려는 몰지각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여기에 일부 구원파 신도들은 자신들이 다 잡혀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그를 지키겠다며 그를 신격화하고 있다. 은전 몇 닢에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가 될 수 없다는 식이다.

유 씨는 결코 존경할 만한 종교지도자나 우리 경제를 지탱할 능력 있는 기업인이 아니다. 배임과 횡령, 조세 포탈에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낱 ‘잡범’에 불과하다.

굳이 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도피행각은 우리 사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그 어떤 것으로도 비호받거나 보호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다.

그런데도 검찰은 그가 숨어 있을 것이라 의심하던 금수원에 진입하면서 구원파 측과 일종의 협상을 벌였다. 그리고 유 씨에 대한 현상금을 올리면서도 그들을 비호하는 이들 중 몇몇은 돌아서지 않겠느냐는 다소 순박한 생각을 내비쳤다. 돈이란 게 원래 동전의 양면처럼 배금(拜金)과 배신(背信)의 기능을 갖기 때문에서다.

하지만 거액의 현상금으로 유 씨의 몸값을 올릴 게 아니라 보다 일찍이 빼든 ‘정의(正義)의 칼’로 그를 굴복시켜야 했다. ‘짚의 방패’ 뒤에 숨어 정의와 법을 유린하는 그를 가뜩이나 세월호 참사로 공황 상태인 국민들이 지켜보게 해서는 안 되겠다.

분초(分秒)가 아깝다. 어서 빨리 그를 검거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침몰 참사의 실체적 진실은 바로 그에 대한 수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세월호 침몰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까닭을 사법당국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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