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났다. 승자나 패자나 선거 과정에서 상당한 마음의 생채기를 입었을 성싶다. 또한 후보자 간 그리고 지지자 간의 감정의 앙금이 가시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 격전의 선거가 끝났으니 서로를 다독거리면서 지방자치의 본래 목적인 주민들의 행복 증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반만 년이 넘는 유구한 우리 역사 속에서 ‘지방자치’란 매우 생소한 제도였다. 고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에 익숙해져 지내다 보니 국민들에게 ‘자치의 경험’,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의 훈련’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잠깐 지방자치의 역사를 돌아보기로 하자. 1949년 7월 4일 제헌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이 제정돼 1952년 4월과 5월 2차례에 걸쳐 지방선거가 실시되기도 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8년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시·읍·면장을 임명제로 환원하는 등 주민자치라는 지방자치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장기 집권을 위해 편의적으로 지방자치를 왜곡했다.

4·19혁명 후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1960년 11월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시·도·읍·면에 대한 전면적 지방자치를 실시하기 위한 선거를 그해 12월에 실시했다. 그러나 장면 정부의 지방자치는 시작도 하기 전에 5·16군사정변에 의해 폐기되고 말았다.

 박정희 군부는 먼저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로 지방의회를 해산했으며, 1961년 6월 비상조치법 제20조에 따라 시·도지사, 시장·군수를 임명했다. 그리고 9월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며 국가공무원으로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그 후 지방자치는 전두환 정부를 지나기까지 기나긴 단절의 시대를 맞았다.

제6공화국 출범 후인 1989년 4당(민정당·평민당·민주당·공화당) 합의에 의해 지방자치법이 마련됐고, 1991년 기초의회 선거와 광역의회 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3당 합당(민정당·민주당·공화당의 통합) 이후 여권은 경제 안정을 내세워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자치단체장 선거를 1995년으로 미뤘다(즉, 지방의회만 있고 자치단체는 구성되지 못한 불구적 형태로 출발했다).

전면적인 지방자치는 문민정부 출범 후에 실시된 1995년 6월 27일 4대 지방선거(기초의회, 광역의회,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에 의해 비로소 시작됐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불완전하다. 예컨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치경찰제를 아직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지방자치 역사는 매우 짧다. 전면적 지방자치가 실시된 때로부터 겨우 20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지방자치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왜곡과 단절의 시대를 거쳤으며 현재도 불완전한 시행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이제 성년기를 맞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가 질적 발전을 실현할 때가 됐다. 국가사무와 자치사무의 합리적 조정, 지방재정의 확충 방안 마련 등 ‘참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시되고 있지 못한 ‘자치경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무늬만 지방자치’가 아닌 ‘실질적 지방자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에서 안전주무관청을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참에 안전 관련 경찰행정업무의 일정 부분을 자치경찰에 넘기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이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왜 대통령과 청와대가 비판의 표적이 돼야 하나?”라고 불만을 표시하거나 “청와대에는 재난·안전에 관한 컨트롤타워 기능이 없다”고 변명할 것이 아니라 경찰행정업무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체제 개편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

 임기응변적 급조된 정부개편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정부개편안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된다면 가슴 아픈 세월호 사건이 지방자치제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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