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도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상대와 대화를 하기 때문에 대화에서 어떤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마치 밥을 먹는 순서를 체계화하고 원리를 찾으라는 말만큼이나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늘 하고 있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원리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의 원리는 문법하고는 달라서 정해진 법칙과 같은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에 구체적으로 말하는 상황이나 맥락 같은 데서 작용하는 어떤 원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객관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사람이 바로 폴 그라이스(Paul Grice, 1913~1988)라는 학자입니다.

영국 태생의 언어철학자인 그라이스 교수는 “명쾌한 말이야말로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매너”라는 말로도 유명합니다.

 이 분은 대화를 하면서 효과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하나의 큰 원리와 네 가지의 작은 원칙들이 작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화의 원리에도 이렇게 이론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대화에 적용되는 한 가지 큰 원리가 바로 협동(協同)의 원리입니다. 사람들이 대화를 할 때는 대화를 통해 서로 협동을 이루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은 지금 하고 있는 대화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해서 그 목적에 맞는 말을 하고, 그리고 말을 듣는 사람은 상대방이 한 말은 지금 하고 있는 대화의 목적이나 상황에 맞는 말일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라이스 교수가 주창한 ‘협동의 원리’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요즘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정말 대화에 ‘협동의 원리’가 적용될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하면서 결국 대화를 하다가 언쟁이 되고, 종국에는 더 큰 싸움이 되고 마는 상황을 종종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그라이스 교수의 이론이 틀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봐도 대화를 하면서 협동을 전제로 하는 사람보다 투쟁을 전제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일부러 대화를 단절하거나 여러 가지 뜻 가운데 가장 나쁜 의도로 해석하는 경우들이 자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너랑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라든가 “누가 너한테 말해 준다고 그랬어?”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협동하겠다는 뜻이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표현하는 경우 외에도 “아무 일도 아니예요”, “별 일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하는 ‘은폐(隱蔽)형’이나 “지금은 누구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 좀 그냥 내버려 두세요”하는 ‘독립형’, “나가주세요”, “나한테 말 시키지 마세요”하는 ‘명령형’ 등 모두가 협동의 원리를 위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도 상하고, 또 자신이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더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대화가 안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습관적으로 협동의 원리를 위반하는 사람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범위에서 협동의 원리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대화의 기본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평소에 협동의 원리에 입각해서 대화를 하고 있는지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