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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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4.06.24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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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이는 평소에도 기인다웠다. 길고양이를 위한 만찬을 준비한다며 고급 식기를 백화점 전문매장에서 사 오기도 했다. “우리 집 차고에서 쉬어 가곤 하는 오만 도도한 그 고양이가 사실은 이집트 왕녀였데. 나는 그녀를 모시던 시종이었고.”

뜬금없이 툭 던지는 말들이 사차원이라 떠돌이 길고양이에 관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그저 세상 걱정 없는 아줌마의 과한 취미려니 생각하고 들어준다.

눈물 많고 급 흥분하고 금세 꼬리 내리고 하루에도 수없이 사계절을 보여 주는 그이는 그래도 천성이 맑음이라 뒤끝이 없다.

염분을 줄인 생선과 유기농 우유로 저녁 만찬을 준비해 왕녀 고양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천진하기까지 하다. 차고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계단 틈으로 망을 보며 왕녀를 기다리는 그이의 눈에 행복한 별이 돋는다.

세상 근심 없어 보이는 그이에게도 걱정이 있다. 공황장애를 앓는 아들이다. 준수한 청년으로 자랐지만 마음은 외모만큼 단단하지를 못해 수정구슬을 조심조심 안고 산다.

그이가 아들을 얘기할 때 늘 붙이는 말이 수정구슬로 만들어진 아들의 심장 이야기다. 약한 파동에도 금이 가고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기 쉬운 수정심장을 받은 아이라 돌봄에 정성을 들인다고 한다.

생명 탄생을 관장하는 창조주께서 이 아들을 자기에게 점지해 주셨을 때는 변함없는 애정을 한없이 줄 수 있다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자기는 맡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엄숙한 수행자로 엄마 역할에 빈틈이 없어야 안심이 된다고 한다.

그이가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교통이 불편한 곳이지만 오롯이 두 모자가 생활하기에는 평화로운 곳이다. 걱실걱실한 그이의 남편이 포클레인 기사를 불러 비탈을 깎고 다듬어 널찍한 마당을 만들어 줬다.

좁은 산길에서 완만한 경사지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아담한 이 집이 나온다. 집 오른편엔 개울이 있어서 나무다리를 건너면 소박하지만 분위기 있는 정자도 있다.

덕분에 이곳에서 시 낭송도 하고 색소폰 연주도 듣고, 그도 아니면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즐기며 쉬어간다. 물소리, 새소리 외 인공의 소음이 차단된 곳이라 감성의 섬세함이 오롯이 되살아나 평온한 일탈을 가진다.

앞마당 뒷마당에도, 비탈밭에도 풋내기 농부의 손길이 더해지기는 했으나 푸성귀도 곡식도 매끈하지가 않다. 뿌린 씨에 싹이 나고 열매가 맺으면 한 몫은 벌레 주고 한 몫은 들짐승 주고 한 몫은 내 몫이라 여겨 나눠 먹고 함께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며 웃는다. 그이가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우리를 불러 모은다.

다듬어 잔디를 깔아 놓았던 마당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나 보기 좋으라고 모질게 뽑아내기도 귀찮고 애초 이 땅의 주인이 자기 땅에서 살겠다는데 악착스럽게 몰아내는 것도 부당한 짓이라 생각돼 그냥 함께 산다고 한다.

 싹이 돋아 새잎 내고 꽃망울 올려 벌·나비 불러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기특해 눈이 가고 마음이 가고 그러더니만 이제는 몸짓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스럽다 한다.

 함께 간 누군가가 앵초꽃을 꺾었다고 핀잔을 들었다. 네잎클로버도 찾지 말고 그냥 토끼풀이 지천이라 앙증맞고 예쁘구나. 구경만 하란다.

함께 어우러져 튀지 않고 사는 삶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게 됐다는 그이는 아들과 이곳에서 평범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시선 처리가 자연스러워 무심한 듯하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이웃으로 받아주는 미덕을 배우는 중이다.

타인의 존재가 긴장을 줘 금 가고 깨지지 쉬운 수정심장도 이곳에서는 티 없이 균형을 유지한다. 유유자적 흘러가는 구름을 담고 야생초와 솔바람의 향내까지 담아 각자는 모자람 없이 화평을 이루는 생명으로 서로를 보듬는다.

심오한 진리도 야단법석 잘난 척도 아닌, 그냥 기울어지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사는 그이가 내 지인이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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