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중진들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고 민주당 지도부 일부가 `총선전 책임총리제 조기 이행'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양당에서 개헌론 불지피기가 이어지자 통합신당측은 `기득권 세력 야합에 의한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강력 성토하는 등 정치권의 개헌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내각제'에 대한 권력나눠먹기라는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 `책임총리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이원집정부제를 주로 거론하고 있으나, 주된 목표는 개헌논의의 확산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이같은 개헌론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통합신당측을 겨냥한 측면이 강해 이같은 공통목표에 따른 느슨한 `반노 연대' 형성여부가 주목된다.
 
통합신당측은 물론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에서도 소장파와 수도권 의원들은 대체로 내각제 자체에 반대하거나, 현 시점에서 개헌논의의 부적절성을 들어 개헌문제의 거론을 반대하고 있으나 내각제론자들은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개헌론의 공론화를 계속 추진할 태세여서 일반국민의 여론동향이 주목된다.
 
◇민주당=정균환 총무는 전날에 이어 1일 다시 책임총리제의 조기 이행을 촉구하고 나선 반면, 김영환 정책위의장은 “중장기적인 문제를 지금 격앙된 상태에서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지하고 나서는 등 당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 총무는 SBS라디오에 출연, “책임총리제는 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고, 한나라당도 공약했다”며 “국정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고, 대선공약을 빨리 지켜 대통령이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총무는 그러나 내각제 개헌론에 대해선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데는 책임총리제와 일치하지만, 민주당은 내각제를 얘기한 적이 없다”고 차단했다.
 
강운태 의원은 “민주당이 지난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지만, 개헌시기 등에 대해 당론을 정한 바 없다”고 말했다.
 
김영환 의장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장기적으로 검토 가능하지만, 지금시점에서 책임총리제는 노 대통령의 탈당과 국정혼선에 대한 재신임론의 형태로 거론되는 것이어서 자칫 감정적인 대응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이 신당에 입당하고 총선에서 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의원은 “책임총리제는 헌법을 안 바꾸더라도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시행할 수 있으나 국내 정치의 바탕과 국민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제도”라고 반대하고 개헌론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태연 국가전략연구소장은 “현행 헌법하에서 프랑스식(이원집정부제) 형태로 정부를 운영하면 위헌”이라며고 책임총리제 시행을 위한 개헌을 주장했다.
 
◇통합신당=“정권을 흔들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음모”라며 개헌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책임총리제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의 총리추천권 행사 주장과 같은 것인지, 그것을 통해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연합하고 공존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책임총리제는 내각제의 다른 판본이며,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을 흔들고자 하는 정략적 의도가 있는지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 대해서도 “내각제는 정책과 정치노선에 따라 정치세력이 집결돼야 하는데 우리는 지역구도에 따라 집결돼 있어 정책대안을 둘러싼 경쟁이 될 수 없다”며 “이원집정부제도 5·6공때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제기돼 국민감정이 그에 대해 열려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은 책임총리제, 내각제 개헌론 등에 대해 “한심한 작태”라며 “경제가 어렵고 태풍·냉해 등으로 농민의 우려가 심각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함께 정권을 뿌리째 뒤흔들려는 쿠데타 음모적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또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구태 정치세력인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손을 잡는 데 부담을 느껴 명분을 만들고 있다”며 “노무현 정권을 일찍부터 식물정권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정세균 정책위의장도 “터무니 없는 생각이며, 국민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는 처사로 자승자박이 될 것”라면서 “민주당은 현재 감정이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고, 박양수 의원은 “어떻게 발을 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한나라당=중진과 영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감이 끝나면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내각제 개헌론을 본격 공론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초·재선 소장파에선 개헌논의에 반대하고 있다.
 
신경식 의원은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국가통치의 힘을 받고, 국민이 지지해야 대통령제가 안정되고 경제도 발전시킬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지금같은 상황에선 대통령 한 사람의 비극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비극으로 간다”며 내각제 개헌을 주장했다.
 
내각제 개헌론자들은 “정권교체를 여러번 거치면서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져 내각제를 수용하고 잘 대처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헌론중에서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자는 주장과 총선전에 개헌을 추진하자는 주장, 순수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 주장 등이 공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초·재선 소장파와 수도권 출신 의원들은 “정치적 투명성, 국력 결집 등 여러 측면에서 내각제는 적절치 않다”면서 내각제 개헌론을 `정략적 차원에서 권력구조 개편 요구'로 몰아붙이며 반대하고, 개헌논의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김문수 의원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으로 성취한 대통령 직선제인데 민심을 저버려선 안된다”고 주장했고, 박종희 의원은 “대선에 패배하자 `꼼수'로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측의 `책임총리제' 개헌 주장에 대해선 분당사태에 반감을 가진 민주당이 노 대통령을 압박하는 정치공세로 보고, 노 대통령과 민주당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재료로 활용했다.
 
홍사덕 총무는 “우리당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며 `책임총리제'는 대선공약이고, 민주당이 노 대통령을 밀 때 합의했던 것의 이행을 요구하는 상황이니 대통령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대통령이 무당적인 상황에서 책임총리제가 도입될 경우 한나라당의 국정참여길이 열리는 게 아니냐며 솔깃해 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취임후 `지역구도 타파를 전제로 17대 총선 후 제1당에 총리 지명권 부여'를 약속한 데 대해 주목하며,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다.
 
특히 `책임총리제' 정착 방안으로 총리 임기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홍준표 의원은 ”대통령이 명실상부하게 무당적일 때 가능한 얘기이며 지금처럼 신당편향적 행태를 보일 때는 실정의 책임만 떠안게 된다“고 반대했다.
 
한때 내각제를 지지했던 최병렬 대표는 대표 당선 후엔 대통령 중임제개헌에 대해 관심을 보였으나 최근 개헌논의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자민련=일찍부터 내각제 개헌을 주장해온 자민련은 내각제 개헌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순수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내각제를 도입해 정치의 중심을 국회로 옮김으로써 책임정치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민련은 조속한 시일내에 내각제를 공론화시켜 하루속히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자고 정치권에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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