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와 ‘리’(理)가 결합한 단어가 ‘의리’(義理)다.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하는 말이다.

본디 의리는 개인 간의 신의, 사회 도덕 질서로서의 도의, 국가에 대한 충의, 나라 사이의 신의 등 여러 개념을 포괄했다. 하지만 여느 단어들처럼 수백 년간 사용되면서 본뜻은 훼손되고 축소됐다.

 현재는 동일한 집단의 구성원 또는 친구 사이에서 배신하지 않고 신의를 지킨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요즘 그야말로 의리 열풍이다. ‘의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탤런트 김보성이 모델로 나온 음료광고가 히트를 치면서 ‘으리 시리즈’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의리를 경상도식인 ‘으리’로 발음한 것도 광고의 재미를 더한다. 개나‘으리’, 대‘으리’운전, 모나‘으리’자, 이‘으리’ 저‘으리’, 아랫도‘으리’, 카카오스토‘으리’ 등등.

이처럼 ‘으리 시리즈’가 유행하는 것은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사회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일 가능성이 높다. 물질만능의 이기적인 사회에서는 정의와 신뢰에 대한 갈증이 의리 열풍으로 표출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정의를 위한 외침을 ‘의리’라는 이름으로 옥죄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의리는 적용범위에 따라 대의와 소의로 나뉘지만 요즘은 소의에만 국한해 사용되는 느낌이다.

의리 사상은 대의와 소의가 충돌할 경우 대의를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소의를 좇다 험한 꼴을 당하는 경우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한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끈 홍명보 감독의 ‘의리 축구’가 도마에 오른 이유도 여기 있다.

안타깝게도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큰 의리는 모르고 작은 의리만을 내세우는 사람들로 득실거린다. 대의를 모르고 소의만 아는 이들이 가득하다.

의리라는 단어가 그저 집단의 이기주의와 욕망을 포장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오늘날, 우리는 작은 ‘으리’를 까부수고 보다 큰 ‘의리’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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