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날 친한 지인이 카톡을 보냈다. “그는 정말로 죽었을까요? 죽였을까요? 아니면 두 눈 멀쩡히 뜨고 어딘가에 살아있을까요?”

70세가 넘은 노인이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홀로 도피하다가 반백골로 발견됐다는 추리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믿어야만 하는 현실에 그 지인도 모든 국민들처럼 속이 시끄럽구나 싶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지난 6월 12일 전남 순천시에서 발견된 변사체는 유병언 씨가 틀림없지만,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내용의 부검 결과를 주검 사진과 각종 분석자료를 거의 다 공개하면서 발표했다. 유 씨 주검을 둘러싼 온갖 불신과 의혹을 잠재려우는 듯 발표 내용도 더없이 자세했다.

이날 밤 유병언의 장남 대균 씨와 그의 도피를 도운 박수경 씨가 검거됐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말이다.

유병언의 시신 발견으로 정관계의 유병언 도우미들이 이젠 두 발 쭉 펴고 자게 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자주 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병언이 정치권에 50억 원 상당의 골프채를 선물했다는 설과 함께 5공 때부터 정치권에 로비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부러 안 잡는 게 아니냐는 루머는 그런 의심에서 싹텄다. 정치권 어디에서도 골프채 행방을 찾자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삼류사회와 불신사회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사고가 난 것부터 어처구니없는 일인 데다 초동 대처나 수습 과정, 유병언 검거 등이 모두 엉망이었다. 불신은 결국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태평성대에도 불만이 없을 수 없고 유언비어가 떠돌기 마련인데, 하물며 지금과 같이 정치적 불만과 불신이 가득한 시대에 유언비어는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뭐지? 이 기분은.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불신공화국이 되는데 명색이 기자인 나도 일조한 것 같아 가슴을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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