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는 복합적이다. 일탈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맛집에 대한 기대와 휴식이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오면 사는 일이 소중해진다.

▲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바쁜 일상의 긴장도 풀어져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품게 되는데 여기서도 핵심은 사람이다. 세상 어느 곳을 가든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중에는 내 가슴에 안겨 집까지 동행하는 이가 있다.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특별히 기억되는 두 사람을 만났다. 아줌마 써니와 주디다.

써니는 15년째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 아줌마다. 남편의 해외 지사 발령으로 아일랜드에 첫발을 디뎠는데 IMF 때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다국적 기업들이 유럽의 전초기지로 아일랜드에 자리를 잡던 시기여서 남편은 곧 취업이 됐고 이참에 새로운 인생 도전이라며 아일랜드로 이민을 왔다.

써니는 억척스럽고 정 많은 한국 아줌마의 근성을 아일랜드에서 유감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여행 안내, 유학생들 현지 적응 프로그램, 기업인들 방문 시 현지 업체와의 미팅 연결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한국 이름 ‘선영’보다 ‘써니’가 정말 잘 어울리는 여인이다.

음식 솜씨가 좋아 맛있는 한식 밥상을 차려 현지 음식에 물린 입맛을 살려주고, 세심한 사전 준비와 인맥을 동원해 유익한 여행이 되도록 애를 써 줬다. 그녀는 늘 유쾌했고 그것이 긍정의 에너지로 작용해 그녀를 빛나게 했다. 한 덩치하는 몸매라 현지에서도 밀리지 않는 체격이지만 아일랜드에서 그녀는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대우받고 있었다.

“최면 요법이라 하잖아요. 나는 아름다운 동양여자에요. 상냥하고 예의 바르고 가끔은 도도하고 지적인 여자로 은근 포장도 하고 그러다보면 정말 나를 특별하게 봐 주더라고요.”

수다도 아줌마의 힘이다. 잠시도 쉬지 않는 입담까지 재미를 더해 줬다. 그 수다의 힘 속에는 가족에게 헌신하고 자신을 위한 공부에 열심이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담겨 있다. 써니, 늘 도전하는 인생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당차고 멋진 여인이다.

또 한 여인은 아일랜드 아줌마 주디다. 그녀는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안주인이다. 아이 셋을 둔 삼십 후반의 나이로 아직 젊은 아줌마지만 예술적 안목과 삶에 대한 내공이 깊었다.

이곳에서의 감동은 그녀의 컬렉션을 보면서 시작됐다. 장식장에 진열된 생활용품이며 주방식기가 단기간에 돈을 풀어서 사 모을 수 없는 품격이라 우리 일행을 매료시켰다.

그릇이며 은수저며 온갖 생활용품들과 집안 곳곳의 인테리어가 그녀의 예술적 안목이 특별함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진열된 물품들은 눈요기 박제가 아닌 실제로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우리도 호강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부끄럼 많은 어린 딸은 선천적으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다. 주디는 불행하다 아우성이 아닌 현재의 삶에 감사를 더하며 살고 있었다. 엄마 손이 필요한 어린 자녀들을 돌보며 숙박객을 위한 준비에도 정성을 다하고, 남편의 암치료 뒷바라지 역시 사랑으로 간병했다.

그녀는 여행객을 귀하게 대접했고 예술작품 같았던 수집품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그녀의 집에서는 가치 있게 쓰였다. 한 번 사용한 후에는 부드러운 천으로 은수저며 은식기를 닦아서 광채를 잃지 않게 해 주는 작업이 손 많이 가는 일이라 성가시다 생각할 수 있는데 그녀는 고유 가치가 빛을 잃지 않도록 정성을 쏟는 일이 당연하다 했다.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내하고 사랑하며 해결 방법을 찾는 데 적극적이고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오히려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아줌마 주디. 그녀는 정신이 평온하면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사람은 격을 잃지 않고 귀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두 여인은 제각기 다른 개성으로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해 줬다. 그녀들의 따뜻한 정서가 편안했고 성실한 삶도 행복해 보였다. 내 가슴속에 담긴 그녀들은 ‘아름다웠다’로 곱게 저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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