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골에서 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시절, 사회과목 담당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셨는데, 서울의 유명 대학 법대 출신으로 오랫동안 사법고시 공부를 하다가 합격하지 못하고 뒤늦게 교사 채용시험을 거쳐 교단에 서게 된 30대 중반의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검·판사가 되려는 꿈을 접는 대신 학생 교육에 헌신하고자 결심하셨던지 대단한 열정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특히 ‘사회계약설(社會契約說)’을 설명하시면서 홉스와 루소 등 계몽철학자들의 심오한 사상을 땀을 훔치면서 열변으로 소개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끔 “여러분은 지금 대학에서나 들을 수 있는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이다”라며 껄껄 웃기도 하셨는데, 시골 까까머리 중학생들한테는 분명 과분할 만큼 수준 높은 강의였음에 틀림없었다.

그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나도 법대에 진학했는데, 대학시절 헌법·법철학 등 법학교재를 정독하면서 오래전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내용들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작은 흥분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중학교 2학년 교사가 수업시간에 ‘중3 또는 고등학교, 대학교 수준의 이야기를 하면’ 소위 ‘선행교육’에 해당돼 징계를 받게 된다.

지난 3월 국회에서 통과돼 2학기부터 시행될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선행교육과 선행학습을 광범하게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대해서는 ‘공교육기관의 선행교육만을 규제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고, 선행학습을 위해 오히려 사교육기관을 더 찾게 하는 부정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등의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생각건대 인간의 호기심과 학습욕구 등 지적 열망에 인위적인 제약을 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인간의 학습욕·지적 열망을 규제하려는 공권력의 시도는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며, 오히려 훗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고도의 발전을 이룩한 데에는 국민들의 독특한 교육열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근대화에 뒤졌던 우리나라에서 요즘 과학·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지식인들이 나오고 있고,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통산 18번이나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의 눈부신 성과를 이룩한 배경에는 ‘엘리트교육’이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펀지처럼 호기심과 학습욕이 가장 강렬한 시기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해 모든 과목의 학습과정을 제한해 이를 초과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배우려 하지 마라(먼저 알면 안 된다)’ 그리고 ‘가르치지 마라(먼저 가르치면 안 된다)’라고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바람직한 것인가?

더욱이 이 법에서는 그 부작용을 우려함에서였는지 ‘자사고 등’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문제다. 왜냐하면 ‘자사고 등에만 선행교육·선행학습의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 돼 일반고 학생들을 차별하게 되는 바, 이는 헌법상의 평등권조항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과열된 사교육’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부작용(학부모 부담 가중 등)이 심각한 상태이긴 하지만, 이를 다른 정책들(공교육의 수준 향상, 지나친 고액 학원수강료 규제 등)로 해결하지 않고 무조건 ‘선행교육·선행학습 금지’로 풀려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이 특별법이 우리나라의 우수한 청소년들에게 ‘더 이상 공부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배울 수 없다’는 ‘좌절감’을 갖게 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되는데, 이것이 나 혼자만 갖는 기우(杞憂)가 아니길 바란다.

지난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는 1980년 신군부가 취한 과외금지 조치가 “배우고자 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자녀를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의 교육권, 행복추구권 등을 제한하므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는데, 그 취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편,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31조 제1항 중 ‘능력에 따라’라는 문언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뛰어난 아이들은 뛰어나게 길러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육 현장의 여러 방면에서 ‘균등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교사의 수업 내용과 수준마저 무리하게 균등화 내지 획일화를 꾀하는 것은 ‘더 중요한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할 우려가 크다. 선행학습금지법의 시행을 앞두고 부작용 방지를 위해 많은 사항들을 미리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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