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갑 김포경찰서 대명검문소장 경위

 수년 전 파출소에서 근무 중 있었던 일이다. 오후 10시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3명이 학교 운동장에서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으로 나가 확인을 했더니 누가 봐도 미성년자임을 알 수 있었고 신고 내용대로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어떻게 본인이 미성년자임에도 어디서든 보이는 곳에서 버젓이 술을 마시고, 신고할 테면 해 보라는 양 떠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파출소로 데려와 술 출처에 대해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술을 마시다 신고가 들어왔고 조사를 마친 후 훈방으로 종결할 것이니 파출소로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는 내용이었다.

통상 이런 경우 보통 부모들은 서둘러 찾아와 아이들을 혼내며 데려가거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아이를 데려가며 조심스럽게 타이르거나 걱정스러운 모습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날 셋 아이들 부모는 달랐다. 세 명의 부모가 하나같이 일을 하고 있으니 지금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미래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들렸다. 다시 학교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담당선생님 역시 지금 멀리 있어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곤란한 상황이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장소가 없으니 최대한 학부모들께 보내 달라는 얘기였다.

아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 순간 나는 아이들이 가여웠다. 경찰서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만한 시설도 없었다. 경찰 이전에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집, 학교, 그리고 경찰관도 어루만져 줄 제도도, 여유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만의 오락을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만의 탓이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집에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눈높이가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봐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 인내심을 가지고 올바른 곳으로 몇 번이고 안내하고 가르쳐야 조금씩 아이들은 변한다.

인내심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하나가 되면 반드시 우리 아이들은 변했다. 아이들은 백지와 같으며 스펀지와 같다.

그리고 이들 같은 청소년도 아직은 성숙하지 못해 집과 학교, 경찰을 비롯한 모든 어른들이 함께 인내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닌 어른들의 의무이다.

제도적 뒷받침은 사회적으로 항상 마련하고 공고히 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어른들이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자세와 인내, 진심 어린 자세 또한 제도적 정책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 우리 어른들 스스로가 우리 아이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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