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다양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책 한 권이 지금도 기억난다. 예쁜 손글씨로 표지 뒷장에 ‘힘내’라고 적어 주며 나를 격려해 준 그 친구가 건네준 책은 의외였다.

 독점 권력의 관리자들이 민중을 유혹하고 정보를 왜곡해 강력한 권력을 구축한 빅브라더를 그려 낸 소설 「1984」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심지어는 화장실에까지 설치해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아마 텔레스크린은 지금의 폐쇄회로(CCTV)쯤으로 선악(善惡)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잘 쓰면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 역할이 되고, 잘못 쓰면 권력자들의 사회통제 수단이 되거나 사생활까지 엿보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의 의미는 무궁무진하다. 각종 범죄를 예방하거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공연음란 혐의를 잡아떼던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거리 곳곳에 촘촘히 설치된 CCTV에 그대로 노출돼 덜미가 잡혔다.

또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동선을 파악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여기에 성폭행범이나 강·절도 등 강력범죄는 물론 쓰레기 무단투기와 주정차 위반 등 사소한 생활범죄까지 잡아내는 등 침묵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설치된 CCTV는 450만~500만 대 가량으로 영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가 작동하며 사회 곳곳을 밤낮 가리지 않고 감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인권 보호 없이 무차별적으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24시간 시민 개개인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범죄에 대한 심리적 억제 효과와 증거 확보에 유용한 CCTV 설치를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다른 대안 없이 문제를 삼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공부밖에 몰랐던 그 친구가 준 의외의 선물인 소설 「1984」는 당시 가졌던 내 고민과 함께 오랜 기억들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억상자 속에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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