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에 나가면 현지인이나 여행가이드에게 ‘그 나라의 독특한 법률문화가 무엇인지’를 묻는 습성이 있다. 수년 전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30대 중반의 가이드 청년에게서 들은 얘기를 전하려고 한다.

그 청년은 재즈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에서 5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고 했는데, 자신이 느낀 독특한 법률문화 몇 가지를 들려줬다.

첫째, 성 개방 풍조라고 한다. 성 개방 풍조는 서구사회에서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네덜란드는 더욱 개방적이어서 결혼 전에 동거를 경험하는 남녀가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동성 결혼과 성매매가 법적으로 허용되고, 성매매 종사자들이 ‘어엿한 근로자’로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며 가끔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파업을 벌이기도 한단다. 그리고 (듣고 깜짝 놀랐는데)노인과 장애인이 성 매수를 할 때에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따라 상당한 할인 혜택을 부여한다고 한다.

또한 죄수(罪囚)나 장애인에게 ‘성적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도 있으며, 일정한 조건 하에 죄수에게 면회 온 배우자와의 ‘합방’을 허용하기도 한단다. 죄수에게도 인권이 있고, 형벌의 목적은 고통을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敎化)를 하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란다.

둘째, 마약에 대해 관대하다고 한다. 즉, 중독성이 강한 마약은 사용과 유통을 금지하지만 중독성이 약하고 인체에 피해가 적은 마약(대마·환각버섯 등)은 개인의 ‘행복추구권 보장’ 차원에서 일정 조건 하에 허용하는데, 길거리에서 저렴한 가격에 마약을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마약 거래가 음성화되면 범죄조직이 이익을 얻게 되므로 이를 양성화하고 여기에서 얻은 세금을 마약 폐해에 대한 교육과 중독자 치료에 사용한다고 한다. 그 결과 마약 사용 인구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점차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셋째, 안락사를 허용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안락사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의사·법률가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판정을 받는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허용한다고 한다.

넷째, 자녀들이 어머니의 성(姓)을 따른다고 한다.

이는 중세 후반기 해상교역이 활발하던 시대에 암스테르담 등의 항구에 뱃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고 또한 성 개방 풍조에 따라 자녀들이 모계(母系)의 성을 따르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다섯째, 사회복지제도가 크게 확충돼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자신의 수입 중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하는데, 불만을 갖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교육·의료·노후생활 보조 등의 사회복지제도 혜택을 받고 있거나 장래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섯째, 사회공동체의 기초를 훼손하는 범죄를 매우 엄중히 처벌한다고 한다. 살인·강도 등의 범죄도 그렇지만 탈세·부정부패(뇌물수수 등) 등의 범죄를 더욱 엄중하게 처벌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개인 대상의 범죄보다 사회공동체의 근간(신뢰 기반)을 해치는 범죄가 더욱 중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곱째, 법의 타당성·실효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예컨대 어떤 도로에서 속도 위반이 자주 발생하면 일정한 검토를 거쳐 곧바로 제한속도를 상향 조정한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에는 ‘자살을 쉽게 할 수 있는 약품을 약국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방송·신문에서 몇 달째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어차피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그가 고통 없이 쉽게 뜻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인도적’이라는 주장도 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듣자니 그들의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법률문화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가급적 허용’하는 관대한 태도, 공동체를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합리적 자세 등이 놀랍기만 했다.

지난 8월 19일 8개월 만에 정상화된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가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산적한 현안들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노사정위원회는 네덜란드의 ‘SER’이라 불리는 사회경제위원회를 모델로 해 설치된 기구다. 어렵게 재가동된 노사정위원회가 성공적으로 운영돼 과거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과 같은 대타협을 도출함으로써 노사관계 증진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네덜란드인들의 지혜와 슬기를 참고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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