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惻隱之心)’이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 나오는 말로,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非人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라는 문구가 있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의지적인 노력에 의해 덕성으로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4단(四端)이며 그것은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근원을 이룬다.

그런데 “사단의 발로는 모두 먼저 측은지심으로부터 시작되니, 이른바 인이 의·예·지를 포함한다(四端之發 皆先自惻隱始 此所謂仁包義禮智也)”고 한다. 말하자면, ‘측은지심’이 인간의 네 가지 덕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포도원 일꾼의 비유’ 등도 인간의 본성인 동정심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중국의 어느 도시 도로 위에 개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 상태로 방치돼 있었는데, 다른 개가 죽은 개를 입에 물어 도로 밖으로 옮겨 놓고 슬퍼하는 듯한 모습으로 지켜보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찍혀 해외 뉴스로 소개됐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어미 개가 죽은 새끼강아지들을 사람들의 눈에 안 띄는 곳에 옮겨 놓고 매일 찾아다니는 모습도 TV로 본 적이 있다.

그 밖에 어떤 침팬지가 멀리서 물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동료 침팬지를 두 개의 전기 철망을 넘어가 끌어냈다는 기록, 아프리카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침팬지 수컷들이 어미를 잃은 새끼들을 입양해 30년 이상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동물에게도 ‘측은지심’이 있는 것일까? “모든 생명체는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타자를 보살핀다”며 ‘공동체적 배려(공감능력)’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도 있다. 우리의 속언에 ‘인정미나 동정심이 전혀 없는 사람’을 가리켜 ‘금수(禽獸)보다 못하다’라고 비난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인간의 본성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측은지심’이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이 ‘측은지심’이 우리 사회에서 메말라 가고 있다. 타인의 불행을 애써 외면하려고 할 뿐 “쯧쯧”하는 ‘혀를 차는 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그런데 외면의 정도를 넘어서서 불행을 당한 사람의 가슴에 소금을 끼얹는 듯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수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경기 불황 속에서 세월호 참사로 인한 애도 분위기가 가급적 빨리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바람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식을 잃은 비통함을 안고 ‘왜 죽어야 했는지 진상을 밝힐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서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죽어 버려라’고 욕을 한다든지, ‘시체장사를 그만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분명 지나치다고 본다.

안산단원경찰서가 세월호 유족들을 비방하는 악성 댓글을 올린 네티즌을 수사한 결과, 모욕과 명예훼손 등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람이 66명이나 됐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이라고 불리워 왔는데, 어쩌다가 이처럼 동정과 배려가 메마른 사회가 됐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우리 집에 거지가 들어오면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간소하게 밥과 국 그리고 김치를 얹은 밥상을 마루 위에 차려 주시곤 했었다.

그러면 그 거지는 등에 업은 아이를 풀어 내려놓고 함께 싹싹 그릇을 비운 다음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떴었다.

그것이 옛날 가난했던 시절 우리네 인정이었다. 그런데 요즘 세계에서 10위권에 드는 잘사는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인정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많은 불행한 사람들을 주변에 방치해 둔 채로 오롯이 나만 행복할 수 있을까?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던’ 아름다운 측은지심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와 우리들의 자녀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추석을 지낸 국민들의 마음이 좀 더 넉넉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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