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건태 사회부장

 스포츠는 스토리(story)다. 그 자체가 역사이고 감동이다. 체육 ‘웅도’ 인천의 스포츠가 바로 그렇다.

개항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스포츠의 효시가 된 인천은 한인 최초의 야구단 ‘한용단(1919년 창단)’을 탄생시켰고,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 군인들에 의해 처음 축구가 전파됐다. 인천이 ‘구도(球都)’라 불리는 이유다.

또 인천에는 제2회 아시안게임(1954년) 레슬링 동메달리스트 임배영(85)옹을 비롯해 아직 쟁쟁한 스포츠 스타들이 건재하다. ‘우생순’의 주인공 인천시청 여자핸드볼팀을 비롯해 코리안 특급 몬스터 류현진(27·LA 다저스), 부동의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궁의 서거원(58·계양구청)전 국가대표 총감독이 있다.

이 외에도 청룡기 3연패를 이끈 한국 야구계의 전설 신인식(75)옹과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우리나라 사이클의 대부 이홍복(80)옹, 세계 무대(1966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에 첫 금을 안긴 장창선(74)옹, 영원한 농구 스타 이충희(55·송도고 출신)선수가 모두 인천 출신이다.

그러나 지난 19일 인천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선 이들을 보지 못했다. 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한류스타’ 이영애와 현빈, 장동건 등 연예인만이 수두룩했다. 이를 두고 개회식을 지켜본 많은 인천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쓴소리를 내뱉었다. “스포츠 영웅은 없고 한류스타만 있었다. 감동은 없고 예능만 있었다”는 것이다.

2007년 4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OCA 총회에서 인천이 제17회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결정된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심각한 재정난만 가중시킬 수 있다며 반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7년을 준비해 오면서 그래도 바랐던 것은 대회만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면 인천이 국제도시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스포츠 제전을 통한 시민 화합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회 개최로 인천에서만 10조6천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4조4천억 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20만1천 명의 고용유발효과 등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회 개막 이후 마치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처럼 모든 게 꼬여만 가는 형국이다. 대회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성화가 개막 다음 날 꺼지는가 하면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도시락에서 식중독균이 발견되고, 선수촌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22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일이 벌어졌다.

또 경기 진행 중 갑자기 정전이 되고 경기장 안에서 자원봉사자와 경기운영요원이 도박판을 벌여 말썽을 빚는가 하면, 급기야 선수촌에 일반인이 무단 침입해 북한 유도선수에게 난동을 부린 사건까지 발생했다.

결국 대회 조직위는 대회를 중반도 채 치르기 전인 지난 24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미숙한 대회 운영에 머리 숙여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러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아시안게임을 치렀다는 자부심보다 국제적인 망신과 함께 사상 최악의 대회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일 거다.

문제는 조직위만이 사과하고 반성해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이다. 조직위는 그야말로 대회 운영을 위한 한시적인 조직이다. 문제투성이인 대회가 이대로 끝날 경우 그 데미지는 고스란히 인천시와 시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아직 대회가 열흘 정도 남았다. 잘못 꿴 단추는 풀어 다시 꿰는 것이 옳은 이치다. 이제라도 대회 조직위가 정신 차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 인천아시안게임의 주체가 인천시민임을 분명히 각인하고, 시민을 경기장 관람석만 채우는 방관자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인천시민의 의식수준을 5만 원짜리로 보는 승용차 ‘강제 2부제’와 같은 사고로는 더 이상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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