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법학박사

내가 중학교 2학년 시절 탐정소설에 흠뻑 빠졌던 기간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학교 도서관에서 탐정소설을 읽느라 밤이 깊은지도 모르기 일쑤였다. 특히 셜록 홈즈 시리즈를 많이 읽었었다.

아서 코난 도일이란 작가는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 ‘셜록 홈즈’를 창조해 전세계 독자들을 열광시킨 영국의 소설가로서 1859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으며 다양한 소재의 추리소설들을 저술했다.

그가 창조한 셜록 홈즈는 1887년 「주홍색의 연구」에 처음 등장한 이래 장편과 단편 총 60여 편에서 활약하며 세계 각국에 소개됐는데, 복잡하고 미스티어리스한 사건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뛰어난 지혜와 독특한 캐릭터에 독자들은 경탄했고, 심지어는 실제 인물이라고 믿게 되기까지 했다.

전세계에 그에 관한 수많은 동호회, 인터넷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고 하니 홈즈의 인기는 세월이 지나도 식지 않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열중해서 읽었던 소설들의 줄거리를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서스펜스, 긴박한 스토리의 전개 및 독자의 예측을 무너뜨리며 뒤통수를 강타하는 대반전 등의 기억은 지금도 작은 흥분을 일으킨다.

일단 소설책을 손에 들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 소변이 마려워도 참으면서 끝까지 읽는 일이 많았었는데, 나도 이 다음에 홈즈와 같은 명탐정이 되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탐정이란 직업이 없다는 것을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관련 자료를 찾아 그 이유를 알고 보니 허탈한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이유 중에 가장 큰 원인이 ‘변호사단체의 반대’로 관련법이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정보 수집조차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국가 공권력도 아닌 민간인에게 국민의 사생활 등의 정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설득력이 충분치 않다. 이런 경우를 두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부작용이 우려되면 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외국 입법례를 참고해 마련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사기관의 오판 또는 태만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통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기도 하고, 초동 수사를 게을리해 중요한 증거와 단서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경찰 수사력이 모자라 충실한 수사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오로지 ‘공권력(수사기관)’에만 목을 매고 의지해야만 하는가?

더욱이 최근 유병언 사건에 대한 부실한 수사, 김창수 제주지검장의 공연음란 물의와 군대 내 가혹행위에 대한 은폐·축소 수사 의혹 등 국민들의 공권력(수사기관)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만일 국가가 관련 법을 만들지 않아 국민들이 탐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가 방치된다면 이는 ‘국가의 입법부작위에 의한 기본권 침해’로서 위헌적 처사임이 분명하다.

종래 국회에는 탐정과 관련된 법안이 여러 차례 제출됐었다고 한다.

1999년 15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하순봉 의원이 ‘공인탐정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17대 국회에선 이상배 한나라당 의원과 최재천 민주당 의원이 ‘민간조사법안’을 발의했으며, 이후 이인기·강성천 한나라당 의원 등이 개정법률안을 내놓았지만 통과되지 못했다고 한다.

19대 국회에서는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이 ‘경비업법개정안’,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민간조사업에 관한 법률안’ 등을 제출했지만 2건 모두 계류 중이라고 한다. 정부와 국회의 심각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OECD 국가 중에서 탐정 또는 민간조사업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고, 외국에서는 사립탐정이 매우 보편적인 직업이며 탐정기업도 존재한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탐정업 적정화에 관한 법률’을 통해 탐정업을 널리 허용하고 있어 6만여 명의 탐정들이 긍지를 갖고 국민의 권리 보호에 기여한다고 한다. 모든 선진국에서 허용하는 ‘탐정’이란 직업을 우리나라에서만 불허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의 과오는 삼심제도(三審制度)를 통해 시정될 수 있으나, 수사의 과오는 시정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국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 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시급히 탐정이란 직업이 허용되도록 정부와 국회는 관련 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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