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신부가 한 명 있다. 신부(新婦)가 아니라 신부(神父)인 친구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같은 반에서 만나 20대를 함께 고민했고,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지금도 서로를 다독거리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장난끼 많은 그 친구가 어떻게 신부가 될까 신기하기도 했다.

한 번은 점심시간, 교실 창문에 기대 그 친구가 실에 쪽지를 매달아 아랫반 여학생 교실에 대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뭐하냐는 물음에 그 친구는 “가만 있어봐. 너 여자친구 만들어 줄게”라는 대답과 함께 10여 분간 줄을 흔들어 댔다. 알고 보니 쪽지에는 나의 신상(?) 정보가 들어 있었고, 낚시는 결국 실패했지만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진지할 때는 또 한없이 진지한 친구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1학년 때 우연치 않게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을 각자 읽었다. 수원 남문에 위치한 한 닭갈비 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는 의도치 않게 그 소설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가톨릭대학교를 다니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그 소설의 화두인 신의 존재와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결론은 허무했다. “넌 불교 신자니까 굳이 이 논리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라는 일침(?) 아닌 일침이었다. 존재론의 철학으로 창조론의 철학을 고민했던 나를 일깨웠다.

이 밖에도 그 친구와의 에피소드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떻게 보면 나의 20대는 여자친구 아니면 그 친구였을 정도다.

이제 그 친구는 어느덧 그야말로 성직자가 돼 있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친구이다. 그래서 한때는 좀 서운하기도 했다. 친구를 신부에게 빼앗겼다는 느낌. 하지만 그 신부는 여전히 내게 1순위인 친구이다.

가끔씩 치열한 현실이 고통으로 다가올 때 그 친구를 떠올린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친구. 살면서 이런 친구 한 명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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