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몇 마리 선회하며 작별 인사를 고한다. 썰물이 에둘러 먼 바다로 길을 재촉한다. 나가는 물은 허둥거리며 뻘을 게워 놓고 고르지 못한 발걸음으로 달음박질친다.

배가 몇 척 떠 있다 슬금슬금 모래펄에 주저앉는다. 물길 위로 이곳까지 온 배는 모래펄에 얹혀 휴식을 취한다. 물길에 삭은 상처를 다듬고 치료하며 배는 휴식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갈고리로 뻘을 헤집는다.

죽은 듯이 숨어 있는 조개가 몸통을 드러낸다. 다시 밀려 올 바다를 기다리며 제 가슴에 담긴 생각이 흩어질세라 앙다문 조개의 입이 결연해 보인다. 사는 곳 풍토를 따라 조개는 색깔을 입는다. 모래펄에는 모래색으로, 개흙에는 진흙색으로. 조개는 영리한 생각을 가졌다.

아이 학부모 모임에서 조개를 잡으러 갔다. 낚싯배를 운영하는 학부모가 있어 하루 나들이를 나온 것이다. 연안부두 북항에서 배를 타고 물길 따라 한 시간쯤 운항한 곳에서 배를 멈췄다.

주변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배들이 대기 중이었다. 물이 급하게 빠져나갔다. 낚싯배는 그리 크지 않아 물살에 몸체가 큰 진동으로 흔들렸다. 어지럼증에 속이 울렁거렸다.

물이 빠져나가면서 모래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배가 정박한 곳은 주변 바다보다 해저 지면이 높은 곳이라 물길이 다 빠져나가지 않았는데도 배는 모래밭과 개흙 위에 얹혔다.

이 정도 바람이면 얌전하다는 선장님의 진단이 있었음에도 육지의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막이로 구명조끼를 입고 스카프로 모자와 머리를 단단히 묶었다. 사다리를 타고 배에서 내렸다.

조금 전까지 바닷물에 잠겨 해저였던 곳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 묘했다. 구멍이 뚫린 곳을 갈고리로 파면 조개가 나왔다. 숨구멍이라고 한다. 무수하게 뚫린 구멍을 파도 조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조개집인지 아닌지 안다고 하는데 초보의 눈엔 그게 그거로 보여 구별이 쉽지 않았다. 만만하지 않은 바닷바람에 몸이 굳어지고 조개는 파도 나오지를 않고 해서 배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타고 온 배의 사다리에 올라서는데 우리 배의 선장이 “조개 많이 잡으셨나요?” 묻고는 무게감이 없어 달랑거리는 내 망태기를 보더니 난감한 웃음을 짓는다.

따라와 보라며 앞장선 선장이 동그라미를 쳐 주는 곳을 파면 영락없이 조개가 나왔다. 점점 배와 멀어지면서 내 망태기가 무거워졌다. 밀물 때가 되면 조개는 활발하게 숨을 쉬어 구멍이 커진다. 조개 숨구멍이 눈에 많아지면서 선명해져 찾기가 쉬워졌다.

욕심내지 말고 빨리 지대가 높은 배 쪽으로 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제일 수확이 좋으리라 잔뜩 마음이 부풀어 왔는데 웬걸, 엄청난 양의 조개 보따리가 보인다. 내가 잡은 조개의 몇 배는 됨직한 양에 기가 죽었다.

뱃전에 기댄 내 몸도 어지럼증을 느낀다. 드러냈던 나신을 감추며 바다는 시치미를 뗀다. 먼 바다 전설은 소문만 무성하다. 따지고 보면 파투난 우정도, 곁을 주지 않는 건조한 애정도, 순수를 잃어버린 나이도 냉정한 이기심의 발로에서 나온다.

마음 합쳐 어울린 시간을 순식간에 싸늘한 파장으로 뒤엎어 버리면 사람 참 허망하다. 의뭉스러운 상대방의 마음을 감지하는 순간,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행여 미련에 발목이 잡힐까 조바심이 나 달음박질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뒤돌아보는 마음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서다. 환청일지라도 못 이기는 척 주저앉고 싶어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과의 별리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어지러운 물결을 가슴에 철독(鐵毒)으로 남긴다. 세상 어려운 맛에 대들다보면 이미 의미가 없어진 일까지, 해결 불가능한 일까지 식탐처럼 끌어안아 천착한 가슴에 동티를 남긴다.

 몸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마음만이라도 휘둘리고 싶지 않아 서늘한 이성을 붙잡아 본다. 그러나 떨쳐내는 일이 가슴의 스크래치를 견뎌내는 것만큼이나 도도해 힘들다.

깊이를 모르는 바닷물에 몸을 디밀어야 하는 것처럼 가슴이 벌떡거리며 불안해진다. 혈관을 타고 심장 깊숙이 들어와 좌심실에 생채기를 내는 고통이 버거워 거부 못할 핑계를 만들어 본다.

마음을 접고 떠나면 붉은 피는 온몸 구석구석을 돌면서 지금 겪고 있는 힘겨움은 수선될 수 있다고 은밀한 통문을 한다.

한발 물러나 보면 판이 보인다. 네가 있어 내 고뇌도, 내가 있어 너의 투정도 존재의 이유가 분명해진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출렁이는 회한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나를 잡아끈다.

 가는 것만큼 오는 발걸음도 가볍지 않다. 그러나 난데없이 유치해진 감정의 해일에 휩쓸려 허우적거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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