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은 지난 10일 연천지역에서 남쪽 민간단체가 날린 대북전단지(삐라) 풍선에 대해 대공포를 사격하는 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구실로 총격을 가하는 직접적인 도발을 저지른 것은 실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나 이를 통해 남북관계의 위기관리(risk management) 측면에서 신중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사실(facts)의 시간적 재구성을 통해 우리의 위기관리 능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건은 10일 오후 2시께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에 의해 연천군 중면 합수리 일대 야산에서 비공개로 대북전단 132만 장을 날려 보냈다. 그 시간 북한군은 대북전단 풍선의 사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추정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북한군 전방부대에 일종의 도발 움직임이 포착됐어야 하는 우리 군의 정보 수집이 있었어야 맞다. 결국 오후 3시 55분께부터 4시 15분까지 20여 분간 북한군 전방초소로부터 풍선을 향해 14.5㎜ 고사총 10여 발이 발사됐다. 발사된 고사포 총탄이 이 지역에 낙탄(落彈)된 총격의 증거를 찾은 시간은 오후 4시 50분이니까 적군의 사격이 끝난 후 약 35분 경과한 시간이다.
이 증거를 찾은 10분 후인 오후 5시께 아군은 대응사격을 준비해 30분이 다시 경과한 후 5시 30분께 북측 전방초소(GP)에 확성기로 여섯 차례 경고방송을 실시하고, 다시 10분 후인 5시 40분께 K-6기관총으로 40여 발을 사격했다. 적의 사격도발 직후 무려 85분 후에 응징했고, 낙탄을 확인한 후 50분 후에 대응사격을 실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자 적 초소에서 오후 5시 50분께 다시 아군 초소에 소총을 수발 발사했고, 이에 오후 6시께 우리 군도 적 초소에 K-2소총 10여 발을 대응사격한 것을 끝으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그리고 상황의 종료 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뒤늦게 오후 6시 10분에는 28사단과 5사단 지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가 오후 9시께 해제했다는 것이 추가적인 사실이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탈북단체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로 장소를 옮겨서 제2차 전단을 살포하고 오후 7시께 활동을 종료했다고 하는데, 그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전단 살포를 막았느냐 못 막았느냐 안 막았느냐가 아니다. 전단 살포행위는 남북이 과거에도 상호 뿌려왔던 심리전 차원의 간접접근 전략전술이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의 현실 상황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 전략이 필요하고, 대북심리전의 주도권 장악 차원에서 신중한 의견을 경청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지혜이다.
그런데 이 갈등 과정에서 몇 가지 살펴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군의 상황조치에 대한 적절한 대응 능력의 허실 문제이다. 첫째, 실상황에 대한 주민 대피 전파가 지연됐다. 우리 군은 총격 확인 직후 무려 55분이 지난 오후 5시 45분께 실제 상황이니 긴급대피하라고 요청했다 하니 유사시 적의 ‘공격전 사격’으로부터 지역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대피 전파 조치가 지연되고 제때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군의 전면전 관련 포병화력 능력은 초기 30분 내 18만 발이 무차별 발사된다는 정보 판단을 고려한다면 유사시 이래서야 주민이 안전할까 하는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둘째, 적의 도발 정보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2014년 국방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에 따르면 우리 군의 대북 군사 전략이 ‘능동적 억제 개념’으로 바뀌었다. 능동적 억제의 전제 능력은 적의 도발에 대한 정확한 정보 획득이다. 이번에 우리 군은 적의 도발 움직임을 대낮이라는 상황에서도 감지하지 못하고 당한 의혹을 지울 수가 없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의 국민적 불신에 대한 면피용 교전규칙 수준의 대응이라면 심각한 전술 부재라 할 것이다.
셋째, 군의 단호한 응징 의지를 의심한다. 지난 7월 20일 신임 국방장관은 KBS의 시사 프로그램 ‘일요진단’에 출연해 “북한이 도발하면 우리 군이 수차례 경고했듯이 도발원점,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밝히며 “체제 생존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번 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은 뒷북치기의 전형을 보여 줬다. 우리 군이 보여 준 대응 능력은 국방장관의 군령이 엄수되는 신속하고 강한 군의 모습이 아니라, 원칙과 기준이 없는 무능의 재발견이거나 유연한 대응 능력 중 어느 쪽이었을까? 우리 군이 북한군에 대해 언행이 일치되는 단호한 응징 의지를 보여 줘서 도발하는 버르장머리를 확 뜯어고치기를 국민은 내심 바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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