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검찰이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법 로비 혐의로 대한치과의사협회를 압수수색했다. 또한 학원총연합회 경기도지회가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법 로비를 했다는 진정서가 검찰에 제출됐다고 한다.
8월에도 불법 로비 혐의로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었다. 이들 사건은 금품을 제공받고 특정 단체의 의견을 입법에 반영함으로써 국회의원으로서의 청렴의무를 위반했다는 혐의에서 비롯된 것인데, 일부 국회의원은 “소신에 따라 입법에 반영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국회의원이 청렴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일부는 억울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입법활동인데, 국회의원이 세상 많은 일에 전문가가 될 수는 없으므로 여러 단체와 개인들에게서 의견을 받아 검토해 타당성이 있다고 보면 이를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주변에는 항시 수많은 이해관계 단체와 개인들이 민원보따리를 들고 몰려들게 마련이며,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많은 단체와 개인들에게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적극적인 입법활동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로비(lobby)’란 민주국가의 입법 과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로비 과정에서 특정 단체와 개인의 의견을 수용하게 되면 국회의원은 청렴의무 위반을 의심받게 되고, 만일 그 대가를 수수하게 되면 뇌물수수 등의 죄목으로 처벌받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미국·캐나다·유럽 여러 나라 등 선진 외국에서는 로비활동에 관한 사항을 법이나 의회규칙으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에서 201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로비스트(lobbyist)에 관한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기도 했지만 단 한 차례의 공청회도 열리지 않고 폐기됐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국회의 법제사법위원에 변호사 출신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많은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로비스트법’이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대형 로펌의 고문들과 재벌그룹의 자문·상담역들이 실제로는 로비스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국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특히 그들 중 대다수는 소위 힘 있는 국가기관(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의 고위공무원 출신들로 ‘관피아’라는 지탄을 받으면서 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수의 ‘검은 로비스트’들에게 축재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보다는 우리나라에서도 선진 외국과 마찬가지로 ‘로비스트법’을 마련해 로비활동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렇게 해야 국회의원들이 국민 앞에 떳떳해질 수 있고 형사처벌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로비스트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기득권층 또는 부유층이 입법을 좌우할 우려가 크고, 혈연·지연·학연 등의 연고주의에 따른 부패친화적 문화가 더욱 확산될 우려가 크며, 변호사법(제111조, 벌칙)·특정범죄가중처벌법(제3조, 알선수재죄)에 상충된다는 것이다. 그
러나 ‘로비스트법’이 없을 경우 오히려 기득권층 또는 부유층이 (음성적인 방법으로)입법을 좌우할 우려가 더욱 크고, 연고주의에 따른 부패친화적 문화가 더욱 고질화될 우려가 크다고 본다.
그리고 변호사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과의 상충 부분은 합리적인 법안 도출을 통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으리라 본다.
대부분의 선진 외국에서 허용하고 있는 ‘로비스트’라는 직업을 왜 우리나라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로비 과정의 불투명성’이 유지되기를 원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로비 과정의 투명성·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로비스트법’이 시급히 제정돼야 할 것이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중대한 사회적 현안이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도 입법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은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식 로비스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의 주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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