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 침입한 도둑을 때려 식물인간 상태에 빠뜨린 청년이 법원에서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 때문에 온 나라가 ‘정당방위’ 논란에 휩싸였다. 퇴근 후 술집에서, 수업이 끝난 학교에서, 하굣길 버스에서, 심지어 부부 잠자리에서도 국민들은 TV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논객 못지않은 근거를 들이대며 정당방위를 놓고 열띤 설전을 벌였다.

전 국민을 논객으로 만든 정당방위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마 1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동료들과 늦은 술자리를 마치고 잠이 들 무렵이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 받았더니 잘 아는 후배로, 파출소에 잡혀 있단다. 서둘러 간 파출소에서 사건 내용을 들으니 대충 이랬다.

혼자 생일을 맞는 친구도 위로할 겸 함께 집 앞 호프집에서 간단하게 술을 마시던 중 10대로 보이는 어린 친구 두 명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이들은 술에 취했는지 호프집 여주인을 희롱했고, 술을 마시던 후배와 후배 친구가 이들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어린 친구가 전치 6주의 상처를 입었다.

후배와 그 친구는 구속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들이 없었다면 여주인은 어떻게 됐을 것인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고 후배와 친구의 행위는 당연히 정당방위가 인정됐어야 했다.

하지만 경찰은 불합리한 처사에 대한 항의에 “때리면 그냥 맞으라”는 대답으로 법 정신을 대신했다. 여주인을 희롱한 19살 꼬마들은 파출소에서도 막말을 쏟아내며 기세가 등등했다.

미국에서는 폭넓게 정당방위가 인정된다. 그러나 우리 형법에서의 정당방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로 정하고 있다. ‘상당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객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행위가 조금 지나치더라도 범죄를 예방할 목적이라면 정당방위가 인정돼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옆에서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그냥 눈감고 지나쳐야 한다. 도와줬다가는 오히려 가해자가 되거나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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